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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사회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101> '개혁개방' 동의어 취급받던 영어, 국수주의 확산에 홀대···학생에겐 사활 문제로

■ 정부 영어교육 축소에 학부모 불안 커져

한 학생이 중국 사교육 기관인 ‘가오쓰교육’ 의 폐쇄된 베이징 지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지난달 23일 촬영된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90년대 말 중국에서는 ‘미친 영어(Crazy English)’ 학습법을 주장한 영어 강사가 있었다. 리양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큰 소리로 영어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 방식을 통해 언어 학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시 베이징 서우두체육관 등 대형 공간을 빌려 공개 강연을 했는데 한번에 10만여명이 참석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69년 생인 리양은 중국 내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배웠고 이후 영어교육 사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중국의 대외 개방과 맞물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리양의 ‘미친 영어’ 프로그램은 한국에도 진출한 바 있다. 중국의 대표 포털인 바이두는 그에 대해 “중국의 영어교육법이 세계에 수출되는 기적을 창조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친 영어’의 창시자 리양의 과거 강연 모습. /바이두


중국인들의 영어 사랑은 유별나다. 물론 이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으로부터 문화와 과학기술을 수입하는 과정에 이의 수단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영어를 아는 것은 해외 문화를 남보다 일찍 수입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마지막 황제’로 불리는 청나라 ‘선통제’ 아이신기오로 푸이가 베이징 궁궐(자금성) 안에 영국인 교사를 두고 영어 공부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선통제는 자신의 영어 이름을 ‘헨리(Henry)’로 짓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졌다. 영국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중국어 ‘천연론’(1897)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옌푸(엄복)은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로 칭송된다. 중화민국 총통이었던 국민당의 장제스는 영어를 거의 못했다고 했는데 다행히 미국 유학파였던 부인 쑹메이링의 통역 도움을 받았다.

공산당 쪽에서 오히려 영어 열기는 더 높았다. 마오쩌둥의 영어 실력도 대단했다. 칼 마르크스의 저작을 영어로 읽었다고 자랑한 바도 있다. 그를 인터뷰해 ‘중국의 붉은별’이라는 책을 낸 에드가 스노의 회고에 따르면 마오는 중요한 단어가 나올 때는 이를 꼭 영어 단어로 말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전면내전’에서 ‘all round civil war’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식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영어 붐은 계속됐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영문과 교수인 부인과는 집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진핑 현 국가주석은 외동딸을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을 보냈다. 나름대로 영어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로런스 배카우 하버드대 총장을 만난 사실을 보도한 인민일보 2019년 3월 21일자 1면. /인민일보 캡처


기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어릴때부터 고향 항저우의 서호에 여행 온 외국인들을 따라다니며 영어를 익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영어로 자신의 사업을 홍보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맥 휘트먼 미국 이베이 최고경영자(CEO) 등이 이에 감동한 사람이다. 마윈은 중국인 기업가 가운데 모국어인 중국어와 함께 영어로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이런 분위기는 대만에도 있다. 현재 대만 총통(대통령)인 차이잉원(蔡英文)은 공교롭게도 이름에 아예 ‘영어(英文)’가 들어간다. 학교를 다닐 때 “너는 이름이 ‘영어’인데 왜 영어를 그렇게 못하니”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고 더욱 분발해 지금은 원어민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중국인 일반에게까지 영어교육이 확대된 것은 공산화 이후 문화대혁명(문혁) 등 30년 간의 암흑 기간이 끝나고 이른바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0년대 말부터다. 중국 정부가 앞장서 학교에 교과를 지정하는 등 영어교육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당시 영어 교육은 ‘개혁개방’과 동의어로 해석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 개혁개방 직후인 1982년 중국 내에서 영국 BBC 영어 교육 프로그램 ‘팔로우 미’의 시청자는 1,000만명 가까이 됐다. 이는 당시 중국내 가정에 설치된 TV의 숫자와 거의 같았다. 모든 가정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의미다. 그해에 ‘러닝 잉글리시’라는 이름의 한 잡지는 5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에 더 확산됐는데 마윈이나 리양 등은 이때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중국인이 영어를 하는데 유리한 점이 있다. 중국어를 표현할 때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한어병음자모’라는 것을 사용한다. 언어 사용 자체에 영어 알파벳이 있는 것이다. 이는 순전한 한글만으로 국어 공부를 하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9월 학기제인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에서 지난 1일 입학식이 진행중이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영어교육이 최근 들어 타격을 받고 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자인 마오쩌둥을 닮으려는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 문제가 돌출된 것이 아이러니다. 물론 마오쩌둥도 개인적으로 영어를 좋아하고 미국에 악감정은 없었지만 시대적 상황은 한국전쟁 개입등 미국과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시진핑도 지난 2019년 3월 중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총장을 단독 면담하는 등 대우를 했지만 현재 미국과 신냉전에 가까운 갈등을 빚고 있다.

물론 중국 공산당 정부도 영어 공무를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 나라의 사정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중국 당국은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미국 등 서구적 사고방식 습득을 꺼려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풍조는 중국이 사회주의 애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 등을 강조하면 할 수로 강해지고 있다. 신쇄국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의 중국의 영어교육 논란은 중국 정부가 지난 7월 사교육 금지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사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어다. 영어 자체로 대학 입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함께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사교육 규제는 영어를 특별히 겨냥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영어교육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는 와중에 나온 정책으로 영어가 가장 큰 다격을 입을 듯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매체들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수입된 영어책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이 사상통제를 강화하면서 외국산 영어교재 판매까지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과정에서 체육과 예술 과목을 제외한 모든 학과목의 사교육을 금지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과과정을 가르치던 학원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강사들은 실업자 대열로 떨어졌다. 당연히 영어교육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영어교육 업체인 ‘월스트리트 잉글리시’ 중국지사는 지난달 말 폐쇄를 공지했다. 지난 2000년 중국에 진출한 이 회사는 그동안 중국인들의 영어 사랑을 등에 업고 사업을 확장했다. 중국내 11개 도시에 39개의 학습센터가 있었는 데 이번에 모두 영업이 중단됐다. 수십 만명의 영어 학원교사들은 실업자 신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 학생이 공산당 선전판 앞을 지나치고 있다. 학교에서도 시진핑 사상 교육이 강화되는 중이다. /EPA연합뉴스


일부 정규 학교들은 한 술 더 떠 학교수업에 영어시간을 줄이고 있다. 소식통들은 “영어교육 시간을 줄이라는 지침이 없었음에도 많은 학교들이 영어 과목 시간을 줄이고 대신 체육과 예술 활동 시간을 늘렸다”고 전했다. 사교육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학교 수업시간을 대신 늘리는 다른 과목과도 대조적이다.

이는 영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반영한다. 최근 상하이시 당국은 초등학생들의 기말고사에서 영어 시험을 빼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이른 경향을 선도했다. NYT는 “중국이 영어 공부를 줄이고, 서방 영향력을 최소화하며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일부의 영어 배척 주장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지난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하고 중국내에서 국수주의 세력이 부상하면서 이런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영어가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는 모양새다. 영어를 교육하되 중국 관점에서 작성된 영어교재가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공산당의 ‘고무도장’ ‘거수기’로 인식되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올해 행사에서 쉬진 정협 위원(구삼학사 중앙위원)은 “학교의 필수 과목에서 아예 영어를 빼자”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이는 시간과 자원의 낭비라는 것이다.

지난 9일 중국 장쑤성 난징의 한 중학교에서 수업이 진행중이다. 중국 일반 학생들의 목표도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AFP연합뉴스


다만 중국 공산당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중국인 학부모와 학생들에게서 영어 의욕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영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진행된 미중의 고위급 외교 회담에서 유창한 실력의 미모의 중국 통역사가 유명세를 탔다. 물론 그는 영어를 통역했다. 만약 그녀의 통역 언어가 프랑스어나 아랍어, 한국어 등이었으며 중국 내에서 호응 정도가 달라졌을 듯하다.

중국은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은 38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31%나 됐다. 이는 인도인 유학생(21만명)의 두 배에 가까운 것이다. SCMP는 “중국의 학부모들은 당국의 교육개혁으로 영어수업 시간이 줄어들면서 자녀들이 손해를 볼까 우려하고 있으며 대안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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