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 생태계 성장에 힘입어 벤처펀드 출자에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벤처펀드가 더이상 고위험 상품이 아닌 안정적인 대체투자라는 인식이 지자체에도 심어진 까닭이다. 다만 일부 지자체의 경우 벤처펀드 담당자 등의 전문성 부족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21일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벤처펀드 주요 출자자로 지자체가 부상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민간 금융 자금이 대형 벤처캐피탈에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신생 벤처캐피탈에는 지자체 출자가 '가뭄에 단비'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규제 완화 영향으로 벤처투자 저변이 넓어지면서 지자체들이 벤처펀드 출자를 가속화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역 지자체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 들어서는 서울 강남구, 성동구, 관악구 등 기초 지자체를 비롯해 군산시 등 비수도권 지자체로까지 벤처펀드 출자가 확대되는 추세다.
대부분의 광역 지자체의 경우 벤처펀드 출자를 산하 유관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산업진흥원이, 경기도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전담하고 있다. 인천광역시도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를, 부산광역시는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을 산하에 두고 벤처펀드 출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선 유관기관들의 경우 벤처기업 육성 경험이 많고 벤처펀드 출자 전문인력도 상주하고 있어 비교적 원활한 벤처펀드 출자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산업진흥원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등은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대형 펀드 결성에 성공하는 등 여느 대형 정책출자자 못지않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구청, 시청 등 공무원들이 직접 벤처펀드 출자에 나서는 경우다. 공무원들의 경우 전담 인력이 아닌 까닭에 전문성 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 잦은 인사 이동으로 업무 연속성 유지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곳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로 인해 지자체 벤처펀드 출자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나오고 있다. 군산시의 경우 올해 초 30억원의 출자를 진행, 200억 원 이상의 펀드 조성을 계획했었다. 이 과정에서 군산시는 펀드 전체 약정총액의 60%에 해당하는 120억 원을 군산 지역 소재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다소 과도한 조건으로 내세워 운용사가 한 곳도 지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사실상 출자금의 4배를 지역 소재 기업에 투자하라는 조건이었다. 보통 지자체의 경우 지역 소재 기업에 출자금액의 1.5배에서 2배를 투자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군산시는 출자금액의 2배를 투자하는 것으로 조건을 바꿔 재공모에 나섰었다.
또 제주도의회에서는 지자체 자금 위탁운용사에 이미 투자금 회수를 완료한 피투자 기업의 사후관리 미비를 지적하는 해프닝이 나오기도 했었다. 투자금 회수를 완료했을 경우에는 위탁운용사가 해당 기업에 대한 사후관리 권리가 없다는 기본적인 벤처펀드 운용의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다.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지자체의 출자 담당 인력들의 전문성 확보가 선행돼야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양질의 벤처투자가 지역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자체 자금으로 펀드를 운용 중인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벤처펀드 출자 자금의 일부를 담당 인력들의 교육에 투자해서라도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벤처투자, 한국성장금융 등 전문 벤처펀드 출자기관과의 협력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앞선 관계자는 "지자체 출자금을 전문기관에 위탁하거나 인력 파견 등을 통한 긴밀한 협업이 이뤄진다면 원활한 펀드 출자는 물론 전문성 확보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