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균형에 대응하겠다며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 한국은행이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방안으로 ‘경기 대응 완충 자본’을 제시했다. 경기 대응 완충 자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온 제도로 은행에 향후 손실 발생을 대비해 완충 자본을 적립하도록 하는 선제적 정책 수단이다. 한은이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의 조합인 ‘폴리시믹스(policy mix)’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26일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지난 8월 26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 회의에서 한은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 대책으로 경기 대응 완충 자본을 거론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은이 금통위에서 구체적인 거시 건전성 정책을 언급하며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한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인상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대출 정책이나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있는지를 관련 부서에 물었다. 이에 한은 담당 부서는 “경기 대응 완충 자본 등의 수단을 통해 금융기관들이 가계대출에 내재된 거시 경제적 리스크를 더 충실히 반영하도록 한다면 가계대출 금리가 지금과는 차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대응 완충 자본으로 은행 부담을 늘리면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낸 셈이다.
경기 대응 완충 자본은 은행들에 유동성을 제한하는 조치로 호황기에는 자본을 추가 적립해 대출을 억제하고 불황기에는 적립한 자본을 소진해 자금을 실물 부문에 공급한다. 신용 팽창기에 최대 2.5%까지 추가 자본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데 현재는 0%로 유지되고 있다. 이 비율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한은과 협의를 통해 정한다. 금융 당국은 오는 4분기까지 가계 부문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경기 대응 완충 자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 비중에 비례해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폴리시믹스를 강조하는 것은 기준금리 인상만으로 집값을 잡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좋아질 때 대출을 늘리는 금융기관의 경기 순응성이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대책을 살펴보자는 취지”라며 “통화정책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전환됐기 때문에 거시 건전성 정책에서도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