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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할 도로 없어 미국 가는 자율주행차…원격주차·배터리 “인증 받다 날 샐 판”[뒷북비즈]

■규제에 신음하는 미래차…말뿐인 혁신에 뒤처지는 韓

무선업데이트, 사업장서만 가능…새 기술마다 허가 필요

원격주차 6m만 허용…배터리 낙하 인증도 국제기준 5배

투자·라인 조정·온라인판매 등 일일이 노조 동의 받아야

배달로봇은 '車' 보도 못다녀…법 제한 막혀 상용화 먼길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모셔널(Motional)의 자율주행 연구시설에서 아이오닉5가 자율주행 기술을 시험하고있다./사진=모셔널 홈페이지 캡쳐




#지난 2월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미국 자율주행 기업 모셔널이 일반 도로에서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화제가 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시험 주행에서는 여러 대의 무인 자율주행차가 교차로, 비보호 방향 전환,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있는 혼잡한 도로를 지났다. 일반적으로 무인 자율주행차 시범 주행에는 경로 확인과 비상 정지 등을 위해 운전석에 안전 요원이 탑승하지만 이번 모셔널 시험 주행에는 안전 요원이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자율주행 시험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이 미래차 기술 선점을 위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 완성차 기업은 시대에 뒤처진 규제에 발목 잡혀 시름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미래 기술을 일단 불허한 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많고 유사한 규제도 강도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도체와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해 마련된 국가핵심산업특별법이 겉돌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지난해 1월 중국 상하이에서 모델3 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원격주차·원격소프트웨어업데이트(OTA) 등 규제로 인한 역차별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국내 시장에 선보인 ‘스마트 서먼(smart summon)’ 기능이 대표적이다. 테슬라 차주는 차량에 타지 않고 이 기능을 사용해 최대 60m 밖에 있는 자신의 차량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차량의 원격호출 가능 거리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는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이 원격주차 가능 거리를 6m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안전기준을 통과하면 수입이 허용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테슬라는 이 같은 기능을 탑재한 차량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는 한국 규격에 따라 만든 차를 수출하고 있다.

자율주행 허가 지역도 미국에 비해 제한적이다. 미국 네바다주는 지난 5월 시속 40마일(72.6㎞) 이하로 운행하는 무승객 차량이 주 전역을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현대자동차가 투자한 모셔널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종특별자치시와 광주광역시 등 일부 산업단지 및 공원에서만 자율주행을 허가하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안전성 점검도 우리나라가 더 까다롭다. 우리나라는 4.9m 높이에서 리튬 배터리를 떨어뜨려 안정성이 입증됐을 때 자동차 탑재를 허용한다. 반면 배터리 낙하 인증의 유엔 국제 기준은 1m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까다로운 기준이 완성차 가격 인상으로 연결돼 국산차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 ‘자율주행차 분야 선제적 규제 혁파 로드맵’을 발표하고 자율주행 등 미래차 규제 완화에 나서왔다. 운전자 개념을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확대하고 자율주행차 안전기준을 마련하며 각종 보험 규제를 정비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규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임시 허가에 그칠 뿐 과감한 규제 개혁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무선업데이트(Over The Air·OTA) 기능이다. 미래차의 핵심 기능이 될 OTA는 정작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OTA는 점검·정비로 분류되며 이 작업은 정비 사업장에서만 가능하다. 불법 정비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자는 취지의 규제지만 소프트웨어가 차량의 주요 요소로 부각되는 미래차 시대에는 걸맞지 않은 규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OTA는 자율주행 기능, 운전자 보고 기능 개선 등에 활용할 수 있고 업데이트 내용이 클라우드에 저장되며 직접 정비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등 편리한 점이 많다. 테슬라가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OTA 기능 때문이다. OTA를 통해 소비자들은 매번 새로운 차를 타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OTA 기능을 일부 허용하고 있지만 한시적인 허용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OTA 서비스 임시 허가를 승인했다. 이로 인해 볼보·BMW 등이 일부 OTA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대차도 조만간 출시할 GV60에 OTA 기능을 처음 탑재한다. 하지만 OTA 서비스를 원하는 완성차 업체가 개별적으로 승인을 신청해야 하는 데다 허가 기간이 2년에 그치고 당초 허가받은 서비스보다 더 진화된 새 기술 도입 시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소비자 대다수가 원하는 서비스인데도 당국은 여전히 ‘규제’라는 틀 안에 갖혀 있는 것이다.

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일부 자율주행규제특구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신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미래차 관련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충전 모습. / 사진제공=현대자동차


규제 완화뿐 아니라 부품 기업에 대한 과감한 연구개발(R&D) 지원, 경직된 노사관계법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법상 미래차 전환을 위한 인력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해외 공장 투자, 생산 라인 조정, 온라인 판매 등에 일일이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단체협약 규정 등은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육성을 위한 입법이 맹탕에 그치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 정부는 최근 반도체 관련 규제를 없애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가핵심전략기술법을 마련했으나 입지 및 환경, 대학 정원 등 산업계가 요구하는 핵심 규제 개혁은 대부분 무산됐다.

우아한형제들의 실내 배달로봇 딜리타워가 서울 영등포구 소재 주상복합 아파트 '포레나 영등포'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우아한형제들


자율주행차와 함께 미래 모빌리티 핵심으로 꼽히는 배달 로봇도 규제에 막혀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온라인·비대면 거래 증가로 수요가 늘고 있지만 법적 제한에 막혀 서비스 상용화가 힘든 상황이다.

배달 로봇이 현실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는 도로교통법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배달 로봇은 ‘차’로 구분돼 보도와 횡단보도에서의 통행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관련 서비스를 시범 운행 중인 업체들은 배달 로봇이 횡단보도 등을 건널 때 직원을 동행시켜야 한다. 사실상 배달 로봇 서비스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관련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들을 대표해 자율주행 로봇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마련해 보도 진입을 허용하게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해달라고 국회에 건의한 상황이다.

도시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도 배달 로봇의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 해당 법은 중량 30㎏ 미만, 최고 속도 시속 25㎞ 미만의 동력 장치만 공원 안을 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달 로봇의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공원 출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외에 배달 로봇이 운행 중에 개인정보보호법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로봇이 음식을 배송하려면 충돌 방지를 위해 운행 중 보행자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는 개인 정보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배달 로봇에 대한 국내 규제와 달리 해외에서는 모빌리티 혁신 차원에서 법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6년 버지니아주에 이어 워싱턴주·펜실베이니아주·인디애나주 등이 배달 로봇의 보도 주행을 허가했다. 일본도 지난 3월 배달 로봇 서비스를 위해 도로교통법과 도로운송차량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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