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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의식해 ‘노정(勞政) 담합 정치’ 빠져…‘노동 존중’은 귀족노조 특권만 키웠다”[청론직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노동정치’로 극소수만 이익, 일자리 쇼크로 대다수 고통

대기업 중심 민노총, 빈곤층 위한 ‘최저임금’ 주도는 모순

신냉전 시대, 기술초격차·노동개혁으로 경제 재도약을

노조가 조직·인적자본 혁신 앞장서야 선순환 구조 가능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29일 서울경제와 만나 “노동 정치가 고착화할수록 직접적인 피해를 더 보는 계층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 세대”라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히 세력을 불리며 제1노총으로 자리 잡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횡포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자동차·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물론 건설 및 택배 현장까지 민주노총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의 청주 공장에 몰려가 물류 배송을 막는 등 불법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러니 “노조가 법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20일 총파업을 선언하며 초강경으로 치닫고 있다. 경찰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기고 불법 대규모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자 민주노총은 “정부가 전쟁을 선포했다”며 적반하장식으로 대응했다.

노동·고용 문제 전문가로 꼽히는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29일 서울경제와 만나 “노동계는 파업권을 활용해 정부에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만들고 정치권은 노동계의 도움으로 선거에 이기려는 노·정 담합의 노동 정치에 모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노동 정치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경제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면서 결국 정권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시대에 맞춰 노조가 앞장서 조직 및 인적 자본 혁신을 추진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임금도 오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4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평한다면.

△현 정부는 경제정책 대표 브랜드로 ‘소득 주도 성장’을 내걸었고 공정 경제, 노동 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패로 끝났다. 경제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면서 소득이 줄었고 노동 존중을 한다더니 일부 귀족 노조의 특권만 키워줬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가장 큰 원인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없애고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만든 제도다. 하지만 정부가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렸을 뿐 기술 트렌드에 맞춘 교육 훈련이나 고용 안정 등 적극적 노동정책을 펴지 않은 게 패착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기업, 공공 부문 고임금 근로자는 혜택을 받았으나 저숙련·저임금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근로시간 감소로 소득이 줄어드는 ‘선의의 역설’이 진행됐다.

-최저임금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지난 1980년대 후반과 지금의 경제·사회 환경은 전혀 다르다. 당시에는 경제가 고성장했고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80%로 소득 격차가 적었다. 노동력이 젊고 노사 관계도 안정적이어서 임금이 올라도 생산성을 높여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률이 당시의 5분의 1에 그치고 근로자 3명 중 2명이 3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을 넘는다. 하지만 정작 교섭력이 필요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미약한 반면 대기업(1,000인 이상)의 노조 조직률은 70%를 넘을 정도다. 그만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가는 근로자위원이 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총으로 구성되는 탓에 최저임금 결정이 전국 단위의 임금 협상으로 변질됐다.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대기업 고임금 근로자를 위한 협상 창구로 전락한 것이다.

-해외의 최저임금 제도는 어떠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들은 정부 혹은 국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법으로 명시했다. 게다가 우리처럼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나라도 없다. 최저임금의 취지 자체가 빈곤층의 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매년 올릴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 제도의 당사자인 최빈곤층에 속하지도 않는, 오히려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조가 최저임금위에 들어가 자기들 마음대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일률적 최저임금제를 업종·규모별 최저임금제로 전환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빈곤층을 위한 정책인 만큼 정부가 결정하되 노사 단체는 의견을 제시하도록 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 또 경제와 고용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29일 서울경제와 만나 “노동 정치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그쳤으나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청년 등 다수의 사람들은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 노동시장을 크게 보면 10%의 대기업·공공 부문 정규직 조합원과 나머지 90%의 중소기업·비정규직 비(非)노조원으로 구분된다.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인해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이 어려워지고 청년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 불과하다. 이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 등을 익혀야 하는데 취업 기회조차 없으니 저임금에 머물고 평생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노동 정치가 고착화할수록 직접적 피해를 보는 계층이 청년 세대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노총이 10월 20일 총파업을 선언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정권 출범 때부터 밀어붙인 최저임금 급격 인상 및 비정규직 철폐는 사실 노동계의 요구였다. 민주노총의 요구를 따랐던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민주노총을 제1노총으로 키우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는 사라지고 자영업과 소상공인에게는 고통을 안겨주면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 됐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갈등이 심화하고 현 정권의 열성 지지층이었던 청년층이 이탈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문제들이 촉발된 근본 원인은 노동 정치의 과잉에 있다. 노동계는 파업권과 단체교섭권을 활용해 정부를 압박하고, 정권은 노동계의 막강한 표를 의식해 담합하면서 노동 정치의 과잉이 고착화했다. 노동 정치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그쳤으나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청년 등 다수의 사람들은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노동 권력이 커질수록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하고 경제주체의 사회적 책임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일례로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ISO 26000’은 정부·산업계·소비자·노동계·비정부기구(NGO) 등 7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지배 구조,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거래 등 7대 의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은 연대 임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산성 임금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생산성이 오른 만큼 임금을 올리자는 취지다. 특히 우리처럼 노동 권력이 막강한 나라에서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직업교육을 하고 플랫폼 근로자에게는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등 혁신을 꾀하는 방향으로 노조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근로자들이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맛보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조의 존재 이유 아닌가.

-차기 정권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정책을 제안한다면.

△노동 개혁, 교육 개혁, 공공 부문 개혁 등 세 가지다. 노동 개혁은 문재인 정권의 실패를 거울 삼아 노동계에 휘둘리지 말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기술 교육 등 세밀한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 스스로의 변화도 필요하다. 또 교육 개혁과 공공 부문 개혁이 중요하다. 교육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독점하고 통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주도하고 개인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기술 습득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적어도 전문대 졸업까지는 국가가 무상교육한다는 생각으로 신기술 교육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양육수당·청년수당 등 포퓰리즘을 남발해 국민들을 현혹시키지 말고 교육에 오롯이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 부문이 민간경제를 뒷바라지해야 하는데 반대로 민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빼앗고 있다. 보육·교육·복지 등 국가의 역할이 중요한 주요 정책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1980년대 실업률 10%를 넘을 정도로 극심한 경기 불황을 겪었던 스웨덴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공공 부문 개혁이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29일 서울경제와 만나 “미중 패권 전쟁으로 인한 신냉정 시대에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미중 패권 전쟁으로 한국 경제의 위기가 커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들리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反)시장 노선을 고집할수록 우리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산업에서 한국과 각축을 벌이는 중국이 반시장·반개혁적인 정책으로 치달을수록 양국의 기술 격차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투자하려고 했던 자본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제조업 부흥을 외치기 시작했지만 제조업 공동화로 인해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입장이다. 일본은 수십 년 동안 투자에 소극적이었으므로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우선순위에 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가 냉전 시대였고 세계화 흐름 속에 중국이 개혁 개방 정책을 펴면서 우리의 경제성장이 정체를 맞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다가올 신냉전 시대에 발맞춰 기술 초격차와 노동 개혁 등을 이뤄내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He is…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6년부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서울시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으며 현재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각계 인사가 모여 만든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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