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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운하 설계자' 곽수경, 이민족의 한족 수탈 가능케 해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20-1·끝> ‘라오바이싱의 낙원’ 스차하이

베이징 스차하이 ‘곽수경기념관’ 앞에 서 있는 곽수경 동상.




중국 베이징 스차하이(什刹海) 서해의 북쪽 끝 모서리 부분에 ‘곽수경기념관’이 있다. 곽수경(郭守敬·1231~1316)은 원나라 때 처음 베이징 운하를 설계한 사람이다. 베이징 운하는 몽골족이 한족의 수탈을 가능하게 한 인프라로 시작됐다.

몽골족의 수장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까지 정복한 후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에 두기를 원했다. 신도시 건설이라는 대형 토목 사업을 벌였는데 더 큰 문제는 물자를 운반할 수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때 곽수경이 발탁된다. 그는 한족으로 베이징 남쪽, 지금의 허베이성 싱타이시 출신이다. 베이징 도시를 설계한 친구 류병충의 소개로 쿠빌라이 칸을 만났고 운하 사업을 맡았다. 그는 베이징 인근 연산과 태항산의 물길을 끌어들여 지금의 스차하이에 모으고 이를 다시 흘려보내 퉁저우에서 큰 강과 연결하는 대사업을 완성했다. 1293년의 일이다.



베이징 운하가 없었으면 몽골족들이 중국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가져와 향락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곽수경은 몽골족들이 그와 같은 한족들을 수탈하는 것이 가능하게 도운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족 입장에서 곽수경을 친몽골파나 매국노·반역자 등으로 비난하기는 망설여진다. 그가 태어났을 때 베이징은 이미 이민족인 여진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앞서서는 거란인이 지배자였다. 한족 국가는 이미 30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가 또 다른 민족 아래에서 벼슬을 살았다고 해서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곽수경을 위대한 베이징 운하 건설자로 여긴다. 물론 곽수경이 봉사했던 몽골족도 지금은 모두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니 적어도 그는 ‘비애국자’는 아닌 셈이다.

/글·사진(베이징)=최수문 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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