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꽃에 비유한 화양연화(花樣年華). 중견 사진작가 박상훈이 11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 ‘화양연화’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린다.
고귀한 보라빛이 눈부시게 화려한 꽃, 힘차게 땅을 뚫고 나온 새순부터 축 늘어진 모습까지도 고혹적인 꽃잎, 씨방을 드러낸 꽃의 뒷모습까지…. 작가는 화양연화를 곱씹으며 꽃에 주목했다. 작업실 근처 도산공원이나 봉은사 등지에서 산책하다 발견한 것들이라고 한다.
“무심히 보았던 꽃 한 송이와 벌레들이 안간힘을 쏟으며 살아가는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 반짝이는 별처럼, 영롱한 이슬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인가 짐작해 볼 뿐이다.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순간이 화양연화라고.”
이처럼 신작은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꽃, 벌, 나비, 벌레, 개미 등 아주 평범한 것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작고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들에서 박 작가만의 비범한 시선과 새로운 양식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아날로그 작업을 해왔던 작가가 신작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융합시켜 색다른 형식을 제시했다. 자연스럽고 처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들 사이로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의 아침이슬이 배치되는 식이다.
작가는 꽃이 핀 순간, 꽃잎에 이슬이 맺힌 순간, 아이들이 뛰노는 순간 등 찰나의 순간들을 ‘영원성’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해석하며 그 경이로움을 바로 ‘화양연화’로 정의한다. 바로 지금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포착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꽃을 예술의 소재로 택하는 일은 무척이나 곤혹스럽다. 어쩌면 아름다움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누구나 좋아하는 꽃 그림과 꽃 작업”이라는 폄하로 내몰리기 십상이라 그렇다. MIT 교수를 지낸 미술평론가 홍가이 박사는 이번 전시에 대해 “박상훈 작가가 한국의 프로 사진작가들이 손대기를 꺼려하는 꽃 사진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통속적인 보기(seeing-as)를 뛰어 넘은, 보기(seeing)를 하는 작가이기 때문 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나의 눈’이라는 보기의 주체를 간헐적으로 내려놓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 즉 진아(眞我)의 눈(unalloyed eye)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평론글에서 밝혔다.
박 작가는 1980년대부터 ‘새벽풍경’ 연작을 선보이며 한국 풍경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시도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들의 사진을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안성기, 송강호, 김희애, 김혜수, 전도연 등 화려한 배우들의 내적 인간미를 끌어낸 사진으로 호평 받았다. 인체의 토르소와 몸통만 남은 나무의 토르소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 ‘토르소’ 연작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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