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D램 반도체가 혹한의 시간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12일 “내년 D램 평균 가격이 올해보다 15~20% 하락할 것”이라고 봤다. 약세의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다. D램 제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3사의 공급이 내년 17.9%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16.9% 증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PC에 이어 스마트폰 감산 소식까지 들려온다. 모바일용 D램 비중이 큰 우리 업체들로서는 설상가상이다. “겨울이 왔다”는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표현이 과하지 않다.
어두운 상황은 이미 눈앞에 다가왔다. D램 제품의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28.9%로 전달(55.1%)에 비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통상 환경까지 온통 회색빛이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들에 재고·판매·매출 정보 등 기밀 사항을 모두 제출하라며 힘으로 반도체 주권을 쥐려 한다. 유럽연합(EU)·중국·일본까지 정부의 대규모 지원 방안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호시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산업 전쟁 9개월이 넘도록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최대 경쟁 업체인 대만 TSMC는 14일 3분기 최대 매출 기록을 발표했다. 일본 소니와 공동으로 8조 원대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까지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삼성 오너들은 전자 주식 매각 등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내기 위한 방안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패권 전쟁에 대응해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신설하고 첫 논의 날짜를 18일로 잡았다. 더 이상의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안 된다. 기술 초격차 확보와 기업의 족쇄 및 부담 제거 등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총력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반도체 코리아’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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