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 본격적으로 상속세제 개편 검토에 착수한다.
하지만 개편 방향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단시간에 유산취득세 도입 같은 근본적인 개편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7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상속세 개편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 작업이 끝나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세소위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11월 초·중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회 논의 시일이 촉박해 공청회 등 일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 당론이 뚜렷이 결정되지 않았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연내 국회 논의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정부 관계자는 "상속세제 개편은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며 "단순히 찬성만 있는 것도, 반대만 있는 것도 아닌 이슈라서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속세에 대해 세율이 지나치게 높고 기업에 과중한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있지만, 최상위 극소수만 내는 세금이어서 부의 재분배를 위해 필요불가결하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명목세율 기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는 소득세 최고세율(42%)을 10%포인트 가까이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최대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물려줄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일반 주식보다 가액을 20% 높게 평가한다.
지난해 별세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이며, 이 가운데 11조원은 계열사 주식 지분에 매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상속세 납부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 상속세 납부자는 극소수에 그치며, 이들이 각종 공제를 받아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세청의 국세 통계 수시공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중 상속세 납부 대상이 된 고인(피상속인)은 전체의 3.3% 정도인 1만181명이었다.
납부 대상이 되더라도 일괄 공제(5억원)와 배우자 공제(최소 5억원) 등 혜택을 고려하면 통상적으로 10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기초공제(2억원)와 자녀 공제 등 기타 인적공제액을 더한 액수가 5억원보다 크면 일괄공제 대신 이 금액을 적용해 10억원 이상 공제를 받을 수도 있다.
또 중소·중견기업이 가업을 상속할 때는 최대 500억원까지, 영농상속의 경우에는 15억원까지 추가 공제 혜택을 준다.
이처럼 양쪽의 의견이 팽팽한 만큼 단기간에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최근에는 유산취득세나 자본이득세 등 새로운 과세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논의가 더욱 복잡해졌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상속 재산이 아닌 상속자 개인의 유산 취득분에 매기는 세금인데, 누진세율 적용에 따른 세 부담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산취득세 도입에 대해 "전체적으로 검토할 때 함께 짚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유산취득세 도입 논의는 현 정부보다 다음 정부의 과제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무업계 한 관계자는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꾸겠다는 건 과세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정하겠다는 것"이라며 "단순히 법률 한 조항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상속·증여세법의 모든 규정을 바꾸는 거라, 연구용역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실무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산취득세보다 (현행) 유산세 방식이 소득세 기능을 보완하면서 부의 대물림을 억제하는 차원에서는 더 타당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면서 "유산취득세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도 좀 더 짚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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