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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고령화·초디지털 사회..."극한 현장에 답이 있다"

[책꽂이]2030 극한경제 시나리오

리처드 데이비스 지음, 부키 펴냄

지진·해일 피해 극복한 印尼 아체

비공식 경제 힘 보여준 난민수용소

제조 경쟁력 잃은 英 글래스고 등

4개 대륙 9개국 16만㎞ '대장정'

성공·실패 분석해 미래 해법 제시

덤벨 들기 이벤트에 참여한 일본 노인들. 일본의 아키타는 평균 연령이 53세로 초고령화의 상징 도시다. 또한 한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미래이기도 하다./EPA연합뉴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인간을 진보의 길로 이끌어 온 명언 중의 명언이다. 아무리 훌륭한 학술 서적이나 보고서가 책상 위에 가득 할지라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넘어설 수 없다. 인간은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갔고, 산을 넘었으며, 바다를 건넜다. 의사는 새 치료법을 찾기 위해 난치 환자를 직접 마주하고, 공학자는 산업 재해를 막기 위해 직접 극한 상황을 겪으며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치명적 실수가 범해지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데 힘이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19는 기존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품게 했고, 겪어본 적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다시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현장은 당장은 보편성이 없고 희귀한 사례일지라도 언젠가 누구에게나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곳, 즉 미래의 창(窓)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리처드 데이비스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4대륙 9개국 16만㎞를 가로질러 ‘현장’으로의 대장정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성공과 실패 사례, 계속 주시해야 할 사례를 속속 찾아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저서 ‘2030 극한경제 시나리오’다. 데이비스는 인도네시아 아체, 요르단 자타리, 미국 루이지애나, 중앙아메리카 다리엔, 콩고 킨샤사, 영국 글래스고, 일본 아키타, 에스토니아 탈린, 칠레 산티아고 등 극한 상황에 처했거나 현재 처해 있는 9개 도시 사례 연구를 통해 미래 생존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 지를 탐구했다.

세계 최대 시리아 난민 캠프인 자타리 난민 수용소.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자체 경제 시스템이 이곳에서 생겨났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아체와 자타리, 루이지애나는 극한 상황에서 의외의 성공을 이룬 곳들이다. 아체는 지진 해일로 폐허가 됐지만 이 곳 주민들은 도시를 버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체를 지켜온 사람들은 그들만의 금융 방식과 지식으로 삶을, 도시를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아체는 경제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인적 자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 보여주는 사례다. 자타리난민수용소와 루이지애나주립교도소는 비공식 경제의 힘을 보여준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을 법한 곳에서도 시장이 형성 되고, 대안 화폐와 결제 시스템이 등장한다. 자타리난민수용소의 창업률은 42%로, 미국의 연간 창업률 20~25%를 웃돌 정도다. 저자는 인간에 내재된 자아실현 욕구와 창의성을 억제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의 경제 시스템이 자연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성공 사례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실패 사례다. 저자는 한때 ‘현대의 로마’로까지 불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글래스고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산업, 정치, 사회 모든 측면에서 설명한다. 글래스고는 19세기부터 조선업을 위시해 제조업의 메카였다. 미술, 과학, 공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혁신의 원조 도시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후발 주자로 뛰어든 다른 도시의 경쟁력에 밀렸고, 정부의 어설픈 구조조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에 더해 도시를 정신적으로 지탱해온 공동체 정신이 붕괴되면서 도시민들의 평균 수명까지 짧아지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한국이 특히 눈여겨봐야 할 사례다. 콩고 킨샤사는 아무리 천혜 자원이 풍부해도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최악의 극빈 도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킨샤사는 공동의 피해나 이익에 주목하지 않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힌트를 준다.



콩코의 킨샤사는 천혜 자원의 보고이지만 정부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미래가 서둘러 찾아온 곳들도 있다. 일본 아키타의 평균 연령은 53세다.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65세가 넘는다. 2050년이면 한국과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이 모두 ‘아키타’가 된다. 초고령 사회에 연금 등 사회보장 서비스, 돌봄 노동, 세대 갈등 등의 문제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게 될 지, 일본의 뒤를 따르는 한국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탈린은 앞으로 등장할 초디지털 국가의 예고편이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정부가 들어섰고, 인구 대비 신설 기업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민들의 신분증 역시 완전한 디지털 형태다. 그런가 하면 산티아고는 경제 기적 이후 뒤따라온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을 짚어볼 수 있는 사례다. 칠레는 2010년 남미에선 처음으로 OECD에 가입하는 등 한때 잘 나갔지만, 상위 10% 근로자의 소득 점유율이 50%를 크게 웃돈다. 이 곳에는 부자를 위한 교육과 빈자를 위한 교육이 따로 존재한다. 인구 14만 명이 넘는 가난한 도시에는 약국도 한 곳 밖에 없을 정도다. 아옌데 정부의 사회주의 경제 실험과 후속으로 진행된 피노체트의 극단적 자유시장 경제 모델 도입이 모두 실패한 탓이다.



책에 등장하는 9곳의 사례가 다른 도시의 현재나 미래에 100% 적용될 수 는 없다. 역사와 지리, 자연 조건, 정치경제 시스템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 사례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이 각자 미래 생존 시나리오를 그리는 데 있어 분명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가 이들 도시를 직접 찾아가 현장을 살피고 연구한 이유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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