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저승사자’로 통하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의 전도사가 됐다. 미국 등 다른 국가의 가계부채 및 경제위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내년에도 가계대출 총량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7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고 위원장은 평소 로버트 실러의 ‘내러티브 경제학’을 인용하며 국내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실러는 책에서 ‘아메리칸드림’이 2000년대 초 내 집 마련이라는 의미로 확대되면서 언론 등에 노출되는 횟수가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추후 금융위기를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시킨 주역이라는 분석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 열풍이 불었던 최근 한국 사회와 판박이라는 게 고 위원장의 주장이다.
이 외에도 고 위원장은 최근 금융위 직원들에게 찰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케네스 로고프의 ‘이번엔 다르다’, 아티프 미안·아미르 수피의 ‘빚으로 지은 집’ 등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직원들이 가계부채에 대해 잘 알고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특히 ‘빚으로 지은 집’은 2000~2007년 두 배가량 껑충 뛴 미국의 가계부채가 이후 2007~2009년 경제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고 자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심각한 불황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유동성 공급 구조, 비탄력적인 주택 공급, 모기지 대출을 통한 소비 등의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점도 조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 기조, 풍부한 유동성 공급이 가계부채 1,800조 원 돌파로 이어진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금융 당국 안팎에서는 이 같은 행보를 통해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고 위원장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 위원장은 취임사부터 최근 송년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수차례 “환영받기 어려운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금융 안정을 지켜야 할 금융 당국의 책무”라며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를 언급해왔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빚으로 지은 집’은 고 위원장이 금융위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던 2015~2016년 금융위에서 유행했던 책”이라며 “가계부채 관리의 중요성 때문에 최근에 추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