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와 정부의 각종 지원금 지급 등으로 가계 저축이 코로나19 이전보다 310만 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초과 저축이 민간 소비 회복 모멘텀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산 시장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고 가계 실질 구매력 저하로 소비 회복세도 제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한은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가계 부문의 초과 저축은 약 310만 원으로 추정된다. 전체로 보면 약 67조 원으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이다. 두 기관 모두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별도 추산한 결과 비슷한 수치를 내놓았다.
가계 초과 저축이 늘어난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해외여행 등이 제한되며 예전만큼 소비할 수 없게 된 영향이 컸다. 여기에 정부가 각종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가계소득도 늘었다.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정부의 가구당 공적이전소득은 2019년 대비 평균 50.3% 늘었다.
초과 저축이 소비 지출로 이어지면 민간 소비는 물론이고 GDP도 크게 반등할 수 있다. 한은은 방역 정책 불확실성,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구매력 하락 등 각종 리스크 요인에도 민간 소비 증가율이 2011~2019년 평균 2.4%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석유류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급등한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마저 늘어나면서 가계 실질 구매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구주 연령이 높을수록 소비성향 하락이 두드러진다는 연구 결과를 봤을 때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으로 소비가 제약될 가능성도 있다. 11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40세 미만의 소비 지출 전망은 124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으나 70세 이상은 106에 그쳤다. 이마저도 의류비·외식비·여행비가 아니라 대부분 의료·보건비 소비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초과 저축을 많이 축적한 가계가 상대적으로 고소득이고 안정성도 뛰어나기 때문에 보복 소비 규모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해당 계층은 한계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낮고 월평균 저축률도 높아 소비를 늘리더라도 새로 발생하는 소득으로도 충분해 초과 저축을 쓸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차·가구 등 내구재 소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팬데믹 이후 축적된 가계 초과 저축 상당액은 주식·펀드 등 자본시장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LG경제연구원도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을 통해 “2020~2021년 소득의 6% 규모 추가 저축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외여행 등 규모가 큰 소비가 제약되면서 저축분을 사용할 부문이 마땅치 않아 소비성향이 크게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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