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으로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임상시험 시장에서 분산형 임상(DCT)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해외 제약사 및 임상수탁기관(CRO)이 ‘비대면 임상’, ‘원격 임상’으로도 일컬어지는 DCT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와 CRO는 좀처럼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규제는 풀렸지만 언제 다시 규제로 묶일지 몰라 DCT를 위한 시설에 투자를 하기 어려운 탓이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7위였던 CRO 업체인 아이콘(Icon)은 올해 2월 5위였던 PRA를 120억 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Icon 측은 “PRA의 모바일 연결 헬스 플랫폼과 Icon의 현장 네트워크·홈 헬스서비스·웨어러블 기기 등을 결합해 DCT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해외 상위 CRO 업체들의 올해 인수 합병 키워드는 단연 DCT였다는 게 한국바이오협회의 설명이다. 협회 관계자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DCT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DCT는 대상자가 병원 등 시험 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임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 임상과 달리 DCT는 전자 동의를 통해 임상 참여가 가능하고 대상자가 직접 단말기를 통해 필요한 데이터를 송신할 수도 있다. 필요한 의약품은 배송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임상 참여가 가능하고 제약사 또는 CRO 입장에서는 참여자를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DCT 사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임상이다. 모더나는 지난해 백신 개발을 위해 12주 만에 3만 명의 분산형 임상 대상자를 모집했다.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의 DCT를 진행했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참여자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화이자의 경우 2011년부터 임상 전체 과정에 DCT 방식을 적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원격 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법적으로는 넓은 범위의 DCT가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업체가 전자 동의서를 활용하고 있는 정도로 활용도는 낮은 형편이다. 시스템 부재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임상은 기관에서 의사가 한다는 인식도 걸림돌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DCT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디바이스를 비롯해 모니터링 시설 등이 필요하다”며 “원격의료를 할 수 없게 되면 비대면 임상실험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도한 개인정보보호 및 임상시험실시기관 지정제도 DCT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요인들”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CRO LSK글로벌PS 이영작 대표는 지난달 열린 DCT 관련 심포지엄에서 “임상이 병원과 의사 중심에서 참여자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임상 방법의 파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원격의료와 의약품 직접 배송을 채택하는 보건의료 당국의 결단이 없으면 국내에서 DCT는 물론 신약 개발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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