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의 상수도를 건설하겠습니다. 물길을 뚫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동성을 연결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체인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만난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최근 체인파트너스는 디파이 서비스 돈키에 이어 체인저 프로, 체인저 스왑 등 연달아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다. 대체불가능한토큰(NFT, Non-Fungible Token) 검색 엔진도 준비 중이다. 이들 서비스가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하나다. ‘유동성 연결’이다.
전세계 거래소, OTC 플랫폼 유동성 한 데 묶어 최적의 환율 제공
현재 전세계 암호화폐 거래소나 장외거래(OTC) 플랫폼의 경우 각각 플랫폼마다 개별적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이를테면 업비트에서 거래할 때는 업비트 회원끼리, 빗썸에서 거래할 때는 빗썸 회원끼리 거래가 이뤄진다. 거래소 간 자금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거래가 이뤄지는 순간에는 유동성이 특정 플랫폼에 묶여 있는 셈이다. 한 번에 대량으로 코인을 매입하는 기관투자자가 일반 거래소를 사용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요가 갑자기 증가하면 코인 가격이 급등할 수 있고, 기관 투자자가 원하는 만큼의 매물량이 없을 가능성도 높다. 이 때문에 보통 기관투자자는 OTC 플랫폼을 통해 거래를 진행하지만 여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각각의 OTC 플랫폼마다 보유하고 있는 공급성이 다르기에 가격도 제각각이다. 최적의 환율로 거래를 원하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곤란한 상황인 셈이다.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탈중앙화거래소(DEX)의 경우에도 저마다 환율이 달라 사용자가 최저가 환율을 찾아 헤매야 한다.
표 대표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의 유동성을 연결해 최적의 환율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체인저 프로와 체인저 스왑이 그것이다. 전자는 전세계 씨파이 플랫폼을, 후자는 전세계 디파이 플랫폼을 연결했다.
표 대표는 “체인저 프로에는 수많은 거래소와 OTC 플랫폼 등 글로벌 유동성 공급자(LP, Liquidity Provider)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고객은 은행에서 환전하듯 특정 시점에 원하는 암호화폐를 원하는 만큼 거래할 수 있다. 체인저 프로는 해당 시점에 최적의 환율을 자동으로 계산에 고객이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객은 별도의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다. 표 대표는 “환전할 때 은행 마진이 환율에 녹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 금융시장에서 외환시장이 촘촘히 연결돼 있고, 환율 스프레드가 좁아지면서 연결 혜택을 많은 사람이 누리듯 체인저 프로도 전세계의 유동성 거점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크립토 결제·투자 등 다방면에서 활용 기대…목적에 따라 환율 제공 가능
표 대표는 이러한 인프라가 다방면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고객의 사용 목적에 맞게 체인저 프로가 제공하는 환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크립토 결제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엔 가격 안정성이 최우선일 것이다. 고객이 물건을 사는 동안 실시간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바뀌면 결제 처리 과정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표 대표는 “이 경우 결제회사가 리스크를 지지 않는 선에서 일정 시간 고정된 환율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투자 목적으로 체인저 프로를 이용하는 고객에겐 실시간 환율을 제공할 수 있다. 그는 “체인저 프로를 여러 업장에 따라 특정 산업의 니즈에 맞는 미들웨어로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내 투자자는 사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일정 요건을 갖추고 당국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체인파트너스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는 데 급급하기 보다는 우선 외국인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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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거래소 유동성도 연결한다…체인저 스왑 출시
체인저 스왑도 유동성 연결이란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체인저 스왑은 전세계 덱스를 한 데 모아 제공하는 애그리게이터(aggregator) 서비스란 점이 체인저 프로와 다르다. 표 대표는 향후 고객확인신원인증(KYC)을 마친 고객에 한해 이 두 서비스를 연동할 계획이다. 씨파이와 디파이 간 에도 유동성을 연결하겠다는 목표다.
NFT 검색 엔진 준비…향후엔 통합 거래 관리 지원
표 대표는 최근 암호화폐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NFT 시장에서도 유동성이 파편화돼 있다는 문제점을 포착했다. NFT마켓플레이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지만 각 플랫폼 별 유동성을 연결하려는 움직임은 나오고 있지 않다. 표 대표는 “전 세계 NFT 플랫폼 데이터를 크롤링해 검색 엔진을 구축했다”며 “향후에는 통합 거래 관리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서비스 이름은 ‘스무디’다.
예를 들면 일론머스크 NFT를 검색하면 오픈씨, 라리블 등 전세계 NFT 마켓플레이스에 상장돼 있는 관련 NFT를 한꺼번에 찾을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선 검색 기능을 지원하고, 나중엔 체인저와 연동해 관련 NFT의 플로어 프라이스(Floor price, 최저가)를 기반으로 거래까지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구축하겠단 계획이다. 표 대표는 “디파이 다음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NFT를 포함해 씨파이, 디파이의 유동성을 한 데 묶는 것은 디파이 2.0으로 가는 방향”이라고 부연했다.
“실패의 전당에 회고 기록 중…작은 문제 날카롭게 푸는 데 집중”
체인파트너스는 지난 2017년 설립된 이후로 지난 2년 간 많은 부침을 겪었다. 한때 직원이 100명을 넘었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소규모로 축소된 상태다. 한국의 첫 블록체인 컴퍼니 빌더로 명성을 떨치며 상당한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데이빗,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 코인덕 등 체인파트너스가 내놓은 서비스 대다수가 잠정 중단됐다. 체인파트너스가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유다.
표 대표는 “실패의 전당에 성공하지 못한 제품에 대한 회고를 기록하고 있다”며 “저마다 실패한 이유는 다르지만 지금도 사업전선을 넓게 벌린 당시의 전략은 유효했다고 판단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좋은 인재와 풍부한 자금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크립토 겨울이 닥치면서 계획했던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이어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추상적 꿈은 암호화폐 시장이 성숙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작은 문제를 날카롭게 풀겠다는 전략적 판단 하에 유동성 문제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표 대표는 “크립토 결제, 사용이 익숙해지는 시대가 열리면 디지털 화폐의 상수도를 만드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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