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채택한 중국에 대한 고강도 규제와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중 간에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폭탄을 중국에 던졌다. 표면적인 불참 이유는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이지만 올림픽을 국제적인 운동경기로 간주할 뿐 중국 정부를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밝혔다고 볼 수 있다.
장기 집권 명분으로 내세웠던 ‘중국몽(中國夢)’은 아니라도 올림픽 행사를 통해 중국의 국가적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했던 시진핑 주석은 예상치 못한 급습을 당한 셈이다.
올림픽 못지않게 통상 분야에도 갈등이 또다시 점화되고 있다. 올해 말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압박해 도출한 1단계 합의가 만료된다. 1단계 합의에서 중국은 2020년과 2021년 2년 동안 2,000억 달러의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기로 했다. 최근 미국의 저명 싱크탱크인 페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1단계 합의 목표치 대비 중국의 수입 실적이 지난해 58%, 올해 62%(10월 기준)로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미 통상 당국은 1단계 합의 이후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미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은 상황이다. 1단계 합의 이행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2단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정치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이고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현 정부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전반적으로 계승하면서도 1단계 합의에서 국유 기업, 보조금 지급 등 중국의 비시장경제적 요소 시정을 위한 조치가 빠져 있다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1단계 합의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수입 의무를 지는 것으로 돼 있다. G2 국가로서 미국에 신형 대국 관계를 요구했던 중국이 이를 수용한 것은 트럼프의 전략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주석에 대한 임기제 폐지를 위한 헌법 개정이 진행되던 2018년 초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최고 25% 관세 부과를 지시하고, 다양한 추가 규제 수단을 검토하자 사정이 다급해진 중국은 하반기에 미국에 협상을 제안했다. 트럼프의 옥죄기 전략이 통한 것이다.
1단계 합의로 2년간의 휴전을 얻어내고 외교 통상 활동을 통해 25% 관세 부과를 철회하도록 미국을 설득할 계획을 중국은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비대면 정상회의를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은 트럼프 관세 철회를 요청했으나 미국은 모두 거절했다. 저조한 1단계 합의 이행 실적을 이유로 미국은 중국을 비난하겠지만 중국도 할 말은 있다. 1단계 합의에서 국내 수급을 고려해 수입해주기도 했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중국 내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사이먼 레서터 전 CATO 연구소 부소장 등 통상 전문가들은 중국 견제 완화 시나리오를 예상하기도 하지만 대중국 정책 딜레마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과 더불어 1단계 합의 불이행을 이유로 또 다른 제재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전망 이면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채택한 ‘노동자 중심(Worker-centric) 통상 정책’도 작용하고 있다. 거창하게 노동자 중심 통상 정책을 내걸었는데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 노동자 중심 통상 정책은 개방으로 노동자가 피해를 본다는 인식을 전제로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것인데 이는 트럼프의 통상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관세율을 조정하거나 예외 조치가 취해진 품목이 더러 있지만 트럼프 관세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더 이상 2단계 합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NYT·12월 15일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대중국 정책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구나 차기 대선을 노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언제든 바이든 정부를 비판하려 할 것이다. 2단계 합의가 쉽지 않음을 인식한 바이든 행정부는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이어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발동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번 보이콧은 대중국 정책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신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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