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이 내년 1월 27일로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은 ‘법 시행일 전까지 준비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10곳 중 5곳은 외부 법률 자문이나 정부에 관련 문의도 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정치권은 중대재해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재해 예방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기업과 기업 관계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경제가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을 앞두고 인크루트에 의뢰해 449개 기업(대표 및 안전 관리 책임자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직 준비를 마치지 못한 기업 333곳 중 44.4%는 ‘법 시행일까지 준비할 수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자금 사정이 나은 대기업 역시 15곳 중 33.4%가 ‘준비를 마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의 중대재해법에 대한 준비가 미비한 가장 큰 이유는 인력과 비용 문제였다. 법 시행 이후 예상되는 어려움(중복 응답)에 대해 기업들은 ‘전문 인력 채용 부담(38.4%)’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관리를 위한 비용 부담(36.7%)’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의무 사항이 엄격한 탓에 가중되는 경영자 부담(32.6%)’ ‘종사자(근로자) 재해 발생 시 과실 여부 판단(31.4%)’ ‘관리 감독으로 인한 노사 관계 악화(22.3%)’가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법은 특히 중소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경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은 고질적인 인력난에다 자금 여력도 부족해 대기업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경우 비슷한 수준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년 만에 준비를 마치라는 요구에 대응하기가 불가능하다”며 “(특히) 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모호한 탓에 기업들이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중대재해법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자포자기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외부 법률 자문이나 고용노동부 등 정부 기관에 문의한 곳은 50%로 절반에 그쳤다. 현재까지 정부로부터 안전 예방과 관련한 사업 지원을 받은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도 73.3%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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