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인터뷰]700년 간 잊힌 '가죽의 예술'에 생명 입히다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국내 유일 칠피 공예가 박성규 한송공방 대표

박물관서 우연히 칠피 옷함 발견 후

나전칠기 대신 가죽에 31년 매달려

소·철갑상어·거북 껍질까지 이용

복원한 유물만 700~800점 달해

칠피 갑옷 재연에 15년째 작업 중

이수자는 딸… "전통 알리고 싶어"

박성규 명장이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자택 안에 마련된 공방에서 칠피 옥새함에 옻칠을 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인모로 만든 붓이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붉은색의 2층짜리 농이 보인다. 방문을 여니 화려한 문양을 지닌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임금의 교지를 옮겨 놓은 붉은 문갑과 선비상, 옥새함, 한글을 형상화한 함 등등. 보고 있으니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다. 얼핏 보면 나전칠기나 목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전혀 아니다. 모두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칠피(漆皮) 공예’ 작품들이다.

박성규 명장이 자택 거실에 있는 '칠피 이층농'의 제작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 두 칸을 이러한 작품으로 가득 메운 주인공은 박성규(69) 한송공방 대표. 대한민국에 단 한 명뿐인 칠피 공예 명장이다.

칠피 공예는 가죽(皮)에 옻칠(漆)을 더해 생명력을 부여한 기술이다. 뛰어난 방습·방수 효과와 높은 강도로 조선 중기인 150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3일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자택에서 만난 박 대표는 “예전에는 왕실에서 옥새함을 만들 때 사용했고 민간에서도 널리 사용됐던 기법”이라며 “외세의 잦은 침략과 철과 같은 재료의 다양화로 점차 명맥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박물관에 보관 중인 칠피 유물 중 상당수는 지난 2006년 명장이 된 그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철갑상어 껍질로 만든 옥새함, 독일 함부르크박물관에 소장된 것을 재현한 ‘황칠문서함’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이 지금까지 대략 700~800점에 달한다. 박 대표를 ‘사라진 전통의 재현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성규 명장이 자택 안에 보관 중인 칠피 공예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래부터 칠피 공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내로라하는 나전칠기 장인 중 한 명이었다. 1989년 한 박물관에서 우연히 본 가죽 옷함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박 대표는 “옷함을 보는 순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전에는 이런 유물을 만드는 장인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31년 칠피 공예 외길의 시작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남아 있는 기록이나 유물이 많지 않았다. 있는 유물들도 국내외에 흩어져 있어 찾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가장 큰 난제는 만드는 기법.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배울 수 있는 스승도 없었다. “가죽에 옻칠을 하면 질겨지고 방습·방수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만 알았지 다른 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구둣방에 있는 가죽을 이용해 필통도 만들어 보고 옻칠을 해보기도 했죠. 원하는 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박성규 명장이 한글 자음을 형상화해 만든 칠피함.


스스로 공부하고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과 전시회를 무작정 찾아다니고 관련 서적을 읽었다. 인모(人毛)로 된 붓을 사용해야 골고루 옻칠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1992년 그가 받은 문화부장관상은 이러한 노력의 첫 결과물이었다.

박 대표는 밥 먹고 잠 자는 것 빼고 늘 집 안에 마련한 공방에서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 탓에 담도 생겼다. 이렇게 일을 해도 1년에 만드는 작품은 10점 남짓. 이 중 80%는 박물관과 유물 수집가의 손으로 넘어간다. 외국인들이 직접 찾아와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칠피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이유다. 물론 힘들다. “제품을 팔려고 해도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알기가 힘듭니다. 백화점에서 의뢰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전시 효과만 노릴 뿐 실제로 판매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박성규 명장의 딸이자 칠피 공예 이수자인 선영 씨가 자신이 만든 칠피 가방을 소개하고 있다.


어렵고 돈도 안되는 칠피 공예의 길을 요즘 젊은이들은 외면했다. 박 대표의 딸 선영 씨는 예외다. 대학 때 디자인을 전공하던 선영 씨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더 배우고 싶어 보존처리로 석사 학위를 땄다. 이후 중앙박물관·고궁박물관 학예사도 했지만 아버지와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일을 그만뒀다. 선영 씨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를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며 “지금은 칠피로 만든 수제 가방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에게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꿈이 있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 보물로 지정돼 있는 칠피 갑옷을 재현하는 일이다. 벌써 15년째 작업 중이다. 그는 “문헌에 따르면 칠피 갑옷은 가볍지만 따뜻하고 화살과 총알도 뚫지 못한다고 한다”며 “지금 총으로 실험을 했을 때도 10발 중 3발은 갑옷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