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놓은 1호 금융 분야 공약을 놓고 금융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과 여당 일각에서 추진하다가 재판청구권 침해 소지에 무산된 ‘편면적(片面的) 구속력’을 다시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이 후보가 당선되면 반대 논리에 귀 닫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수 있다”며 좌불안석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보험 소비자 보호를 위해 2,000만 원 이하의 소액 분쟁 사건에 한해 보험회사 등은 정당한 사유 없이 금융감독원의 분쟁 조정 결정에 불복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를 보험뿐만 아니라 금융 영역 전반에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
편면적 구속력 도입은 2008년 이후 금융 당국 안팎에서 꾸준히 거론된 ‘뜨거운 감자’다. 현행 금융분쟁조정제도는 금융 소비자와 금융사 양쪽 모두 조정 결정을 수락해야만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한쪽이 조정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결국 소송으로 다퉈야 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 조정안이 사장되고 만다. 이 때문에 상대적 약자인 금융 소비자가 조정안에 만족하면 금융사는 무조건 이를 따르게 강제하자는 취지다. 편면적 구속력은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공론화됐다.
현 정권 금융정책의 토대가 된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최종 권고안에 포함돼 윤 전 금감원장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대를 멨지만 끝내 법제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민간기구인 금감원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건 헌법상 권리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금융사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조차 “금융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일견 이해가 되지만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도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금융위는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하는 조정제도의 본질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 후보 선대위는 “다수의 보험 소비자와 국민을 위해 보험사 등의 기본권이 일부 제약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재추진을 선언했다. 웬만한 반론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완강한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실제 법제화할 경우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금융사 직원은 “금융 상품 특성상 일시적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마다 금감원 분조위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악성 민원인) 양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사 고위 임원은 “일선 창구 직원들이 민원 리스크를 지기 싫어 수익이 안 나는 소액 상품 판매를 꺼릴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 후보 측의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조정 결정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분조위의 독립성을 강화시키고 분쟁 조정 절차를 소송절차에 준하도록 정비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 후보는 2009년 이래 해묵은 과제인 ‘실손보험 청구 체계 간소화’도 공약했다. 다만 “병원과 보험사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다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 편의 증진이라는 목표와 의지가 명확하다면 구체적 방안 마련과 추진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며 “충분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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