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용 배터리 내재화에 서두르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미국 테슬라가 배터리 자체 생산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독일 폭스바겐도 이를 뒤따르는 모습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전기차 원가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다만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 생산 대신 배터리 업계와의 합작 투자 방식으로 내재화를 추진 중인 만큼 배터리 업체들이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4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콘퍼런스콜을 통해 “모델Y 차종에 테슬라가 자체 제작한 배터리 셀 4680을 탑재했다”고 밝혔다. 4680 배터리는 지름 46㎜, 높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로 기존 2170 배터리에 비해 용량과 출력이 각각 5배·6배 높다. 미국 텍사스주와 독일 베를린에 배터리 생산 시설을 구축한 테슬라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배터리 양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폭스바겐은 스웨덴 노스볼트와 중국 궈쉬안 등 배터리 업체에 대한 지분을 직접 인수하며 자체 양산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폐배터리 재활용과 배터리 개발 등의 사업을 그룹 산하 배터리 사업부로 통합하기로 했다. 오는 2030년까지 유럽에 배터리 공장 6곳을 지어 총 240GWh(기가와트시)의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테슬라와 폭스바겐을 제외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 생산보다는 배터리 업계와의 합작 투자를 통해 배터리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전기차 배터리의 자체 생산에는 선을 긋고 있지만 관련 투자에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과 인도네시아 카라왕에 연간 생산 용량 10GWh 규모의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세우고 있다. 배터리 분야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에는 한층 더 적극적이다.
지난해에만 미국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인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에 1억 달러 규모의 지분 투자 계약에 더해 또 다른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인 ‘팩토리얼에너지’와도 공동개발협약(JDA)을 맺고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최근에는 미국 양자컴퓨터 회사 ‘아이온큐(IonQ)’와 손잡고 기존 배터리의 효율성과 안전성 등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도 각각 LG엔솔·SK온과의 합작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GM은 최근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3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중 4번째 합작공장 위치도 공개하기로 했다.
다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배터리 양산에 나서는 데 주저하는 것은 성공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독일 BMW는 기술이 더 발전하기 전까지는 배터리셀 자체 생산에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가 배터리 내재화와 관련해 주도권을 갖는 것처럼 보이나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폭스바겐도 아직 멀었다”면서 “배터리 업체들이 몇 십 년에 걸쳐 준비해온 사업을 완성차 업계가 단번에 이루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이 합작 투자한 배터리 기업에 기술 공유를 요구하고 있어 배터리 내재화가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이에 대해 국내 배터리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배터리 회사들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완성차 업계가 기술을 가져가기는 어렵다”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배터리 화재 등 방지를 위해 배터리 생산 조건을 최적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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