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주술사 개코원숭이 라피키가 아프리카 소울 가득한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을 노래한다. 무대와 객석 먼 곳까지 선명하게 내리꽂히는 목소리에 기린과 코끼리, 표범, 가젤 무리 등 초원의 생명체가 하나둘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렇게 깨어난 사바나는 초원의 왕자, 어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며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24년간 전 세계 21개국에서 1억 1,000만 명과 함께 한 명작 뮤지컬이요, 지난 5일 3년 만에 한국 관객과 만난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공연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눈 호강’ 할 시각적 자극이 몰아친다. 아프리카 사바나를 완벽하게 무대 위에 담아낸 조명, 총천연색 의상, 실감 나는 동물 마스크와 퍼펫까지. 라이온 킹이 펼쳐내는 무대는 화려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풍요로운 ‘볼거리’를 더욱 재밌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마스크와 퍼펫을 착용하고 빚어내는 ‘몸의 언어’다. 동물의 움직임과 아프리카 토속 댄스가 녹아든 ‘묘한 매력’의 안무를 배우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테레사 윙 상주 안무 감독의 설명으로 들여다봤다.
■밀림의 역동성 담아낸 춤
라이온 킹의 안무는 자메이카 출신 무용가인 가스 훼이건의 작품이다. 동물의 특성을 반영한 동작부터 야생 밀림의 역동성,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모습을 골고루 담아내며 1998년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안무상을 받았다. 테레사 윙은 “라이온 킹 안무는 현대 무용과 아프로-캐리비안(Afro-Caribbean) 춤을 바탕으로 한다”며 “동물의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극 중 선악의 싸움까지 묘사하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거대 마스크 쓰고 춤추는 비결?
이 작품을 볼 때 많은 사람이 품게 되는 궁금증은 ‘저 큰 마스크를 머리에 이고 저렇게 춤을 춘다고?’일 것이다. 역동적인 군무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 중 암사자 사냥 장면이나 사자와 하이에나 무리의 싸움, 그리고 성인이 된 심바와 그의 친구 날라가 서로를 몰라보고 싸우는 장면에는 높은 점프와 일사불란한 동작, 와이어 액션을 연상시키는 역동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실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마스크는 모두 탄소 섬유로 제작돼 그 무게가 100~300g으로 가볍다. 그러나 춤출 때 시야나 균형을 방해할 수밖에 없기에 특별한 연습은 필수다. 테레사 윙은 “퍼펫에 대한 비밀은 관람의 즐거움을 위해 비밀로 남기겠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배우들이 마스크와 퍼펫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고, 아티스트와 자신의 마스크가 완전히 결합되기까지 많은 연습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연습’은 다른 뮤지컬들과는 사뭇 다르다. 배우들은 연습 때도 연습용 마스크를 착장하는데, 이때 배우의 시선이 아닌, 마스크의 시선끼리 마주치도록 훈련한다. 또 이 훈련을 위해 거울을 보며 마스크 썼을 때의 눈의 위치를 확인해 고개 각도를 조절한다. 이 밖에 오프닝에 등장하는 치타 역시 신체 관절의 움직임에 따라 퍼펫이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만큼 팔의 각도, 발 보폭 등이 퍼펫과 연결됐을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체화하는 과정이 필수다.
■어렵지만, 아름다운 명장면은
테레사 윙은 1막에 등장하는 암사자의 사냥 씬과 2막의 사자-하이에나 대결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둘 모두 안무적으로 뛰어난 장면이다. 그는 “암사자의 사냥 씬은 여성 앙상블의 아름다운 춤 선과 테크닉, 관능미, 퍼펫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막의 대결 장면에 대해서도 “사자와 하이에나의 싸움을 매우 빠른 동작과 진영 별로 다른 디자인의 안무로 표현한 2막의 클라이맥스”라고 답했다.
테레사 윙은 지난 2018-2019 내한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코로나 19라는 어려운 시기에 어렵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전 세계 공연계가 큰 고통을 겪는 이 어려운 시기에 라이온 킹을 한국의 관객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자 ‘영혼의 승리’라는 이 작품 주제와 어우러진다”며 “우리 공연을 지지하고 환영해 준 관객들에게 늘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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