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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의 미학' 국립익산박물관…자세를 낮춰 역사를 품다

[건축과 도시] 국립익산박물관

세계문화유산 '미륵사지 터' 경관 살리려

경사로 따라 지하로…'역사를 발굴하는 광산'

전시관 유물 감상하며 지붕 전망대 오르면

찬란했던 백제 문화·자연 오롯이 느껴져

박물관은 건축물의 높이를 낮추기 위해 경사로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는 방식을 택했다. 일주문을 통해 사찰로 진입하는 사찰의 진입방식을 적용해 이곳을 통해 내부로 향할 땐 마음을 정화하는 느낌이 든다. 윤준환 사진작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첫인상으로 보자면 건물인지 공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입구로 들어가 전시 공간을 둘러봤으니 분명한 박물관이지만, 관람을 마치고 나와 뒤돌아보면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지하로 파고들어 설계돼 위에서 내려다보면 약간의 경사로를 포함한 그저 넓은 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덕분에 바로 옆의 세계문화유산 ‘익산 미륵사지 터’는 인위적인 건축물의 시각적 방해 없이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옛 고귀함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1월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 터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독특하게 설계된 ‘보이지 않는 박물관’이다. 미륵사지 터에 남아 있는 두 개의 석탑과 주변을 둘러싸는 용화산, 남측 연못이 유려하게 어우러지는 바로 옆에 위치했다. 박물관에 보관된 각종 백제 시대 유물에는 무왕과 선화공주, 왕비로 추정되는 귀족의 딸과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건축가는 이처럼 강력한 땅의 기운을 품은 곳은 형태적 모티브를 강조하기보다 대지의 조건에 맞춰 단순하게 풀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건축 형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래로, 아래로…‘보이지 않는’ 박물관=미륵사지 터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건축가는 박물관의 높이를 가능한 한 낮추기로 했다. 박물관을 둘러보려면 경사로를 따라 입구로 내려간 후 지하로 점점 더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지상의 미륵사지 터를 둘러본 다음 과거 유물의 흔적을 따라 점차 지하를 향하는 식이다. 과거를 향해 땅을 파 내려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박물관을 설계한 신수진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곳을 ‘역사를 발굴하는 시간 광산(鑛山)’이라고 소개하고는 한다.

박물관 부지는 미륵사지 서측 유물 전시관을 포함하는 삼각형 모양이다. 전시관 입구에 다다르는 경사로 길을 건축물 중앙에 배치하고 높은 층고가 필요한 전시실 공간 등은 좌우로 배치했다. 일주문을 통과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사찰의 진입 방식을 구현했다. 용화산 남쪽 좌우 능선에 자리 잡은 미륵사지 터와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대지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가급적 모든 장식적인 요소는 배제했다. 그나마 외형적 특색을 표현할 수 있었던 지붕 또한 잔디로 덮어 드러나지 않게 했다. 처음에는 문화재 심의에 따른 각종 제약을 피하기 위해 고민했지만 현장 방문으로 대지의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의 변화를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색채를 그대로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관람객이 지붕으로 올라가 박물관과 미륵사지 터의 풍부한 자연환경의 향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대로 외관 디자인의 콘셉트가 됐다.



박물관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특색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니다. 최초 현상설계를 통해 선정된 설계안은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최초 설계안은 미륵사지 석탑의 중심 돌인 ‘심주석’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정사각형의 건축물 외형이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설계안 선정 후 국립중앙박물관·익산시청 등과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설계안은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대지의 특수성, 출토 유물 수집이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설계안 원안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현상설계 당선작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미륵사지 터와 박물관의 연결성을 감안할 때 ‘드러내지 않는’ 박물관의 형태가 더 적절할 것이라는 건축가의 적극적인 설득이 결국 통했다.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터에 들어선 국립익산박물관 전경. 세계문화유산의 미관을 해치지 않고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건축물은 보이지 않는 듯 낮게 설계됐다. 윤준환 사진작가


◇층 따라 돌며 역사 캐는 ‘시간 광산’=지상에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고 올라가는 특성을 가진 건축물인 만큼 하부 기능실들의 층고는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수장고는 지하 2층에 마련됐고 지상에서 시작하는 경사로 하부는 지하 1층이 됐다. 경사로를 따라 정점에 닿은 곳은 지상 1층이 되는 등 입체적인 구조다. 높은 층고가 필요한 전시실은 지상과 연결된 남측 지붕 하부에 한 층을 온전히 차지한다. 북측은 2개 층을 뒀다. 1층 하부에 공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부분은 선큰가든을 두고 옥외 계단으로 지상과 연결했다. 이곳에 뮤지엄숍과 사무실 등이 마련됐다. 선큰가든과 연계된 카페테리아 외부는 오리엔테이션이나 간단한 공연이 가능한 장소로 기능한다.

박물관은 긴 경사로를 통해 시작된다. 미륵사지 터를 둘러보고 온 관람객은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 천천히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이후 로비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붕으로 향하면 박물관의 최정점인 전망대에 서게 된다. 이곳에서는 미륵사지 터 전체를 찬찬히 살피며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와 미륵사지의 모습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너른 대지에 가까운 지붕 위에서 미륵사지 터를 둘러보면서 관람객은 자신만의 미륵사지를 건축할 수 있게 된다.

박물관 내 상설 전시실인 미륵사지실의 전경. 이곳에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 또 다른 왕비라고 추정되는 백제 귀족의 딸과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유물과 함께 존재한다. 사진=윤준환 사진작가


이처럼 뚜렷한 특색과 문화유산에 대한 세심한 배려 덕분에 익산박물관은 2020년 건축문화대상 본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흔적을 발견하는 공간’ ‘시간을 찾아 들어가는 공간’ ‘공간 역사의 시간과 만나는 공간’ ‘시간의 켜가 겹쳐진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했고 이것을 ‘타임 레이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다”며 “그래서 늘 ‘시간 광산’이라는 문구로 이 박물관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건축 과정에서 고대 백제 문화와 불교 문화에 관해 깊이 공부할 기회가 됐다고 했다. 신 대표는 “한국의 사찰이 가진 풍부한 건축적 어휘의 매력 때문에 기회가 되면 사찰을 둘러보는 편”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방문자의 동선과 역사를 접목해 내러티브한 설계 방식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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