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최영기 칼럼] 다음 정부에 드리운 정치 리스크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

재정·노동개혁 등 과제 첩첩산중인데

대선후보들 토론서 경제정책 공방 실종

"규제 풀어 기업 살린다" 원론적 얘기만

진영 아우른 통합 없인 또 5년 기다려야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5년 내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소득 주도 성장은 생소했고, 간판 정책으로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분배 개선을 목표로 하는 ‘소주성’을 성장 정책으로 내세우다 보니 정책 메뉴가 마땅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제로, 근로시간 단축처럼 문 정부의 초기 정책들은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정 목표와 충돌하는 것들이 많았다. 여당 내에서조차 ‘을’들의 전쟁을 걱정하며 임기 3년 차에 새 경제팀을 꾸리고 궤도를 수정한 후에야 혼선을 수습할 수 있었다. 2019년 이후 정부 여당은 을들의 전쟁을 피하는 방법으로 재정을 풀기 시작했고 비판의 초점도 방만한 재정 운영과 국가 부채 규모로 옮아갔다. 정부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 구조 개혁이나 노동·교육·공공 부문 혁신은 제쳐두고 재정을 퍼부어 성장과 고용 관련 지표만 관리한다는 비판이었다. 코로나19 위기는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논란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대선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워야 할 경제정책 공방이 보이지 않는다. 한바탕 격돌을 예상했던 21일의 경제 관련 TV 토론도 싱겁게 끝났다. 디지털 경제나 다음 정부의 재정금융정책 방향에 대한 토론은 맛보기에 불과했고 그나마 토론의 주도권은 안철수 후보의 몫이었다. 사전 투표가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주요 후보들의 경제관을 알 수 없고 경제 관련 대표 공약조차 분명하지 않다. 국민의힘 후보는 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오답 노트는 갖고 있는지, 집권하면 어떤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캠프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이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규제를 풀어 기업을 뛰게 하겠다는 경제 원론은 지금 한국 경제가 당면한 국제 환경을 보거나 고질적인 생산성 위기를 감안할 때 너무 한가한 이야기다.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장기적인 생산성 정체와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합의가 있었다. 지난 10일 한국경제학회도 정기학술대회에서 7대 정책 과제를 발표하며 이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학회 집행부가 제시한 30대 과제 리스트를 놓고 63명의 패널이 투표를 통해 15개를 추렸고 정회원 1078명의 투표로 7대 과제를 뽑았다. 진영과 정치적 편향성을 걸러낸 학계의 총의를 모아 다음 정부에 정책 권고를 한 셈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생산성 정체와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한 총력 대응과 부동산 버블의 연착륙에 실패하면 악화일로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경고가 핵심이다.

문제는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다. 저생산성과 저임금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영세 서비스업의 합리화나 디지털 경제를 위한 노동·교육 개혁이라는 처방전을 갖고도 역대 어느 정권도 선뜻 나서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선 캠페인의 흐름으로 보아 다음 정부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면 다 죽는다’는 식의 전쟁 같은 선거를 치르고 나면 야당들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나설 게 뻔하다. 더구나 개혁의 고통보다 더 많은 현금 지원만을 약속한 후보들이 경제 개혁을 선도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무능이다. 경제지표와 문화 면에서는 이미 선진국이라지만 탈원전 문제나 4대강 사업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환경에서 어떤 경제 개혁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부끄럽게도 25년 전 외환위기 와중에 IMF의 감시하에서 타율적인 경제 개혁을 실행한 것이 가장 최근의 경험이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 개혁 과제를 능동적으로 수행할 때에야 5대 경제 강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 대선이 끝나는 즉시 당파의 시대를 넘어 진영을 아우르는 대통합의 정치 연합을 구성하지 않는 한 경제 개혁은 또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연합 정치와 합의 경제가 최선의 선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