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강행한다는 소식에 금융 공공기관들이 지방 이전 공포에 휩싸였다. 산업은행뿐 아니라 서울에 남아 있는 다른 국책은행, 금융 공공기관으로 지방 이전 논의가 확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금융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 균형 발전 효과를 내기보다는 국가 경제·금융정책의 신속한 집행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책은행 이전은 ‘본점을 서울에 둬야 한다’는 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도 반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책은행 지방 이전에 맞서 파업까지 불사할 계획이다. 기관 이기주의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지만 국가 금융 경쟁력이 먼저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무역보험공사 등 서울에 본점을 둔 금융 공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수위 논의 과정에서 국책은행을 넘어 금융 공공기관·공기업에도 지방 이전이 적용될 수 있어 노심초사다.
차기 정부가 국책은행과 금융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균형 발전이다. 본점에 근무하던 인력이 대거 지방으로 유입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해당 기관들이 지역 할당제를 통해 지방대학 졸업생을 신규 채용한다면 청년 실업률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객관적으로 봐도 이 같은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산은의 경우 서울 본점에 근무하는 1700여 명 중 본사를 서울에 둔 대기업을 상대로 한 구조 조정 관련 부서 등을 제외하면 지방 이전이 가능한 인력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수은 역시 서울 본점에 근무하는 900여 명 중 상당수가 대외경제협력기금(ECDF)에 근무하고 있다. ECDF 업무의 주 파트너인 주한 대사관들이 주로 서울에 위치한 점을 고려하면 지방에서는 업무가 어렵다.
인력이 지방으로 유입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우수 인력이 수도권의 다른 회사로 이탈하고 미래 잠재 인재마저 입사를 피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초기 직원의 지방 정착률은 20%에 그쳤고 지금도 절반에 못 미친다”며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은 아직도 우수 운용 인력의 이탈에 고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산은 내부에서는 지방 이전으로 구조 조정 지원 및 산업 재편의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대면 시대라고 하지만 자칫 잠깐의 실수로 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서류 조작 등을 스크리닝하지 못해 수은·무보가 거대 금융 사기에 휘말렸던 ‘모뉴엘 사태’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이전으로 지역이 작은 ‘득(得)’을 얻는 대신 국가에는 큰 ‘실(失)’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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