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50조 원 추경을 주문했다. 선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동참했던 소상공인은 지원해 마땅하다. 대형 사업장이나 공공시설 등에서 바이러스가 많이 퍼진 실제 경험에 비춰 우리나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방역 부담을 지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 예산을 사용하려면 규모와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50조 원은 한국의 연간 국방비 예산 총액과 맞먹는다. 미사일을 연달아 펑펑 쏘아대는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 국군이 무기·연료·식량·인건비로 1년 동안 사용하는 돈만큼 큰 액수다. 애초 선거 과정에서 여당 후보가 30조 원을 제시하자 야당이 더 많은 금액으로 맞받은 게 50조 원이다. 근거가 정확한 숫자라면 1차 추경에서 16조 9000억 원을 이미 지원했으므로 나머지에 대해 논의해야 맞다.
정치권에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반길지 모르나 적자를 불러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윤 당선인이 참석한 인수위 워크숍에서 김형태 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며 새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 안정에 두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적자 국채를 발행해 지출을 늘리는 것은 원자재와 곡물 가격 급등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셈이 된다.
적자 국채 발행은 최근 7년 반 만에 최고로 높아진 국채금리를 더 부추겨 국민의 금리 부담을 가중시킨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신용대출 금리 모두 4%대 내외로 올라갔다. 많은 소상공인이 대출에 의존하는 실정에 비춰 금리를 올리며 지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따라서 2차 추경을 한다면 꼭 지켜야 할 원칙은 적자 국채 발행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도 소상공인을 지원할 재원은 기존 세출예산을 구조 조정해 마련한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한국 국가부채는 올해 1차 추경으로 1075조 원으로 확대되며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26년 66.7%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나랏빚을 많이 늘렸는데 새 정부도 적자 국채로 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빚 내지 않고 예산을 절약해 소상공인을 지원하려면 새 정부가 추경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이미 확정된 지출예산을 줄이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추경 편성을 압박하면 적자 국채 발행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인수위에 기획재정부 예산 전문가가 파견돼 있다고 하니 추경안을 준비해 5월 10일 새 정부 출범에 맞춰서 하면 된다. 행여라도 6월 1일 지방선거 전 집행을 목표로 추경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선거철에 돈 뿌리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낭패다.
지방자치단체가 선심 지원을 남발하는 일도 막아야 한다. 순천시는 관내 소상공인에게 업체당 300만 원을 줄 계획이며 서울의 한 구청에서도 임차 상공인에게 100만 원을 지급한다. 국가지원금과의 중복과 지역 간 형평성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경기도는 국가가 하위 88%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을 때 나머지 12%까지 채워준 적이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낭비를 줄여야 해마다 막대한 교부금을 지급하는 국가 재정을 지탱할 수 있다. 재정 건전성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목표다. 그러자면 266조 원이 소요되는 공약 사업도 정리·축소하고 정치적 필요 때문에 추경을 반복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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