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는 호남 출신의 정통 경제 관료다. 특히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진보·보수 정권에서 고루 중용된 ‘통합’ 이미지가 강점이다. 그는 통상 관련 요직을 거쳤으며 주미 대사까지 지냈다. 이에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관련한 ‘경제 안보’까지 챙길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한 차례 지냈다. 이후 한국무역협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등을 역임해 경륜과 식견이 더욱 깊어졌다는 기대를 받는다. 한 후보자가 총리로 취임하면 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 전 총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두 정권에 걸쳐 총리를 맡는 사례가 된다.
관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해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일했다. 1982년 부처 교류 차원에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겨 통상과 산업 정책을 담당했다.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학구파 일벌레 수재’로 꼽혔다. 성품은 합리적이고 온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혼자 결정하기보다 토론을 중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품위 있는 영어를 구사하기로도 정평이 났다.
민주화 이후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산업정책국장을 맡아 북방 정책 중 관련 정책 실무를, 김영삼 대통령 취임 뒤에는 1993년 청와대로 파견 가 산업담당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상공부로 돌아와 통상무역실장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추진과 대일 무역 규제 해제 실무 등을 진행했다. 1997년 차관급으로 승진해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장관급인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이후 주OECD 대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을 차례로 거쳤다. 다만 2002년 7월 한중 마늘 협상 파문으로 경질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책연구기관장인 산업연구원 원장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경질 1년 7개월 만에 고위 관료로 재기한 것이다. 탄핵 정국 때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하며 위기 상황을 넘겼다. 이해찬 총리 체제에서는 당정 간 정책 조율을 맡아 ‘책임 실장’ 역할을 했다. 또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관련 업무 등을 지원했다.
2005년에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부동산 정책과 금융·산업자본 분리 관련 정책 등을 손봤다.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주무 장관 대신 총대를 메고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 직속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한미 FTA 특보직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4월 그를 참여정부의 마지막 총리로 발탁했다. 꼼꼼한 일 처리와 탁월한 조정 능력이 발탁 요인이었다. 총리 시절 북한의 내각총리였던 김영일과 총리회담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2009~2012년 주미 대사로 임명됐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실무형 인사로 중용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무역협회장과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공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국정 현안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3월부터 에쓰오일 사외이사로 취임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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