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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비전으로 영국병 잠재운 대처…'빅뱅' 드라이브로 런던 금융허브 탈바꿈

공기업 민영화·경쟁 촉진 등 앞장

무기력 빠진 英 국민·산업 일으켜

경제성장률 -4%서 5.5%로 반등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연합뉴스




2013년 4월 8일. 일명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사망했다. 런던 세인트폴대성당에서 준국장(國葬)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이례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참석해 조의를 표했다. 영국 왕실이 정치인 장례식장에 공식 참석한 것은 2차 대전 영웅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이후 대처가 처음이었다.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오늘날 현대 영국의 설계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무기력증에 빠진 영국을 구해냈고 일명 ‘빅뱅’으로 불리는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해 런던을 오늘날 전 세계 금융허브로 변모시킨 업적 덕분이다. 국가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성장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최진우 한양대 교수는 “대처는 일관된 비전과 무서운 추진력으로 유럽의 환자를 강자로 탈바꿈시킨 지도자였고 동시에 누구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가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대처의 성과는 수치로 증명된다.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경쟁 촉진 등 패키지 개혁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대처 취임 전인 1975년 27%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은 1986년 2.4%까지 낮아졌고 경제성장률도 집권 직전 -4%에서 시작해 1988년 5.5%대까지 상승하면서 반전을 이뤄냈다.

단순히 축소 지향 정책만 펼친 것도 아니다. 그는 빅뱅 금융 개혁을 통해 추락하던 런던의 국제 금융 중심지 지위를 끌어올렸다. 대처는 1986년 은행과 증권업 간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증권거래소 가입 자격, 증권 매매 위탁수수료 등을 완전히 자유화했다. 경쟁을 일으켜 시장 전체를 키운다는 복안에 따른 조치였다. 국내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우리나라 정부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금융기관들을 관치의 울타리 속으로 내몰아 제대로 된 성장 전략을 펼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우리 금융 산업에도 빅뱅과 같은 과감한 규제 완화 조치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대처의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급격한 민영화와 지출 축소로 대처가 집권하기 전 150만 명 수준이던 실업자 수는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권기에 300만 명까지 불어났다.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이때의 양극화가 영국 경제 전반에 씻을 수 없는 부작용을 남겼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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