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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가상세계에 중앙은행 만든 꼴”…BIS, 규제 도입 가속 [조지원의 BOK리포트]

담보자산 없이 신뢰로만 시뇨리지 창출

중앙은행 화폐 발행과 다를 바 없지만

최후대부자 역할 법적 제도·능력 없어

BIS 등 국제사회 규제 도입 속도 낼 듯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9개월여 만에 4천만원 밑으로 떨어진 13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의 시세가 표시돼 있다./권욱 기자 2022.05.13




“자산도 없이 신뢰만으로 시뇨리지(seigniorage·화폐 주조 차익)를 창출한 건 사실상 가상세계에서 자체적으로 중앙은행을 만든 거랑 다름없죠.”

한국산 스테이블코인인 테라USD(UST)와 이에 연동된 가상자산 루나(LUNA)의 가치 폭락 사태로 전 세계적인 금융시장 혼란이 발생한 가운데 이들이 채택한 가치 안정 방식이 사실상 중앙은행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은행이 법률과 신뢰를 바탕으로 화폐를 발행하듯 테라 발행 주체인 테라폼랩스 역시 자산 담보도 없이 화폐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테라폼랩스가 중앙은행과 달리 발권력을 동원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빠르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앙은행들의 감독원 역할을 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스테이블코인 규제·감시 방안 도입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테라·루나 가치 안정 방식은 알고리즘형

19일 한은의 ‘2021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안정시키는 방식에 따라 통화·상품 등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자산담보형과 알고리즘에 따라 발행·환수 등 유통량을 조절하는 알고리즘형 두 가지로 나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테라·루나는 후자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먼저 스테이블코인인 테라는 1개당 가격이 미국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됐다. 테더 등 다른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미 달러화에 고정하기 위해 현금이나 국채 등 안전자산을 담보로 두고 있다. 하지만 테라는 안전자산 담보 없이 자매 코인 루나의 발행량을 조절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담보가 없어도 수학적으로 완벽한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예를 들면 테라 1개는 항상 1달러어치 루나와 교환된다. 루나는 다른 가상자산처럼 가격이 변동하기 때문에 1달러로 바꿀 수 있는 루나의 양은 계속 바뀐다. 만약 테라 가격이 0.8달러로 떨어지면 테라 1개를 1달러어치 루나 1개로 바꿔 투자자는 0.2달러 이득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중에 있는 테라는 수거돼 공급량이 줄면서 테라 가치는 다시 1달러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테라 가격이 1.2달러가 되면 투자자는 루나를 사서 테라로 바꿔 팔아 차익을 얻고 이 과정에서 테라를 시중에 풀게 돼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하지만 테라와 루나에 대한 동시 매도가 집중되자 서로 영향을 주며 걷잡을 수 없는 폭락이 나타나게 됐다. 테라·루나는 규모가 컸기 때문에 이슈가 됐을 뿐 이전에도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이 무너진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앞 / 연합뉴스


발권력 가진 ‘최종대부자’ 중앙은행과 달라

경제학계에서는 테라의 가치 안정화 방식이 법적 신뢰성을 바탕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과 다를 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뢰의 대상이 중앙은행이라는 법적 시스템과 테라폼랩스가 만들어 낸 알고리즘이냐는 차이 정도라는 것이다. 루나 유통량을 조절하는 것도 한은이 공개시장에서 금융기관과 유가증권 거래를 통해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하는 공개시장조작과 유사하다.



문제는 법적 제도나 능력 측면에서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법적으로 화폐가치를 보장하고 이러한 신뢰성을 바탕으로 화폐를 발행하기 때문에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또 중앙은행은 위기 상황에서 화폐가치가 유지될 수 있도록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할 수 있는 발권력도 갖추고 있다. 이른바 최종대부자 기능이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일시적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발권력을 동원해 부족 자금을 공급해 위기를 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반면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법적인 제도나 자산이 존재하지 않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사태에서도 가치 방어를 위해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계가 드러났다. 결국 이번 사태로 테라·루나의 가치 안정의 근간이었던 알고리즘에 대한 믿음이 깨진 만큼 회복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경제학자는 “스테이블코인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중앙은행처럼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물론이고 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 강화 근거 될 듯

한은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은 일찌감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자산은 일종의 투자 자산으로 볼 수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낮은 데다 보관이나 거래가 쉬워 지급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증권과 유사해 관리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조달한 뒤 담보자산을 확보한 뒤 운용하는 구조가 은행이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스테이블코인의 담보 자산을 형성하는 방식이 사실상 유사수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 규제 당국은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발행기관을 은행으로 제한하는 입법을 제안한 상태다. 특히 미국 금융안정감독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을 내세우지만 알고리즘 매커니즘에 따라 가치가 유지되므로 시장 상황과 운영 리스크 등 잠재적 위험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BIS도 스테이블코인으로 인한 소비자 보호, 사이버 보안, 자금세탁 방지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규제·감시 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BIS 지급결제 및 시장인프라 위원회(CPMI)와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는 이미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을 금융시장 인프라로 간주해 지급결제 관련 국제기준(PFMI)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상태다. 관련해 시장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3분기부터 PFMI 적용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한은은 CPMI-IOSCO 운영그룹 멤버로 참여하면서 이번 사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글로벌 공조가 필요한 만큼 몇 개 국가만 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닌 만큼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만 이번 사태가 촉매제가 됐기 때문에 글로벌 규제 도입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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