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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망 사용료, 보다 정교한 입법 논의를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내서 트래픽 유발 큰 넷플릭스 등

망 사용료 이중 지불 놓고 논란 확산

한미FTA 상 양국 기업 차별 못해

통상마찰 피하려면 법 개정 신중해야





디지털 시대는 우리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며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생활, 거래 방식이 물밀듯이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제 교역의 기본 틀도 뒤흔들고 있다. 이를 둘러싼 국가 간 다툼도 나날이 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미중 분쟁도 새롭게 전개되는 디지털 시대의 패권 경쟁이다.

디지털 사회가 급격히 도래하며 여러 국가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새로운 상황과 현안에 대처하는 일이 시급해진 까닭이다. 개인정보 보호, 소비자 보호, 과세 형평, 기술표준 도입 등 전방위적으로 여러 국가가 다양한 규제와 법령들을 내놓고 있다.

지금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인터넷 ‘망 사용료’ 문제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넷플릭스·구글 등 외국 콘텐츠 회사들 때문에 국내 인터넷 망에 과도한 트래픽이 유발되니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관련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는 6개 법안이 지금 발의돼 있다.

누구든 공짜로 무임승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 비용을 내야 한다. 문제는 무임승차인지 여부다. 우리가 집에서, 회사에서 인터넷 접속을 위해 통신사를 선택해 거기에 사용료를 내듯이 외국인과 기업들도 자국에서 통신사를 택해 사용료를 지불한다. 그리고 그렇게 접속료를 받은 전 세계 통신사들은 서로 연결해 글로벌 인터넷 망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구글 같은 회사들은 전 세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다.



망 사용료 문제는 이런 콘텐츠 회사가 자기 나라에서 인터넷 접속료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비용을 해당 국가에서 다시 한번 부담해야 하는지 여부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중 부담은 그간의 국제관행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망 사용료를 강제하는 국가를 찾기 어려운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또한 지금 망 사용료 부과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은 주로 미국 콘텐츠 회사들인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의 접촉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한미 FTA에는 한국 서비스 기업과 미국 서비스 기업을 서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흔히 말하는 ‘내국민 대우’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차별은 법령상·제도상 발생하는 공식적 차별뿐 아니라 법령상 중립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업 환경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차별도 포함된다. 사실 최근 내국민 대우 관련 국제분쟁은 대부분 후자의 경우다.

그렇다면 망 사용료 문제도 실제 사업 환경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따져보는 게 핵심이다. 한국 기업, 미국 기업에 동일하게 사용료를 부담하도록 한다는 개정안의 공식적 중립성만 봐서는 한계가 있다. 가령 한국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한국 통신사에 사용료를 낸 한국 기업들이 있다 해서 미국에서 이미 자국 통신사에 사용료를 낸 미국 기업들도 한국 기업과 동일하게 다시 우리 통신사에 사용료를 내게 한다면 실제 디지털 시장에서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관련 산업과 인터넷 생태계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만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미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올해 3월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를 일종의 교역 장벽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이유는 없으나 앞으로 여러 나라와 불필요한 통상 마찰을 피하려면 보다 면밀하고 정교한 검토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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