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지역에서 상추 농사를 짓는 강모(66)씨는 이달 상추 한 박스(4㎏)를 8000~9000원에 넘기고 있다. 도매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은 한 박스에 평균 1만 5000원. 강씨는 "산지 가격은 크게 변동이 없는데, 인건비와 화물비가 뛰면서 도매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때 이른 무더위와 가뭄 피해에 국산 농산물 가격이 무섭게 뛰고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으로 운송비가 뛴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격 여름 나들이철을 앞두고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에 이어 국산 농산물 가격마저 들썩이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치솟은 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약 14년 만이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석유류(34.8%)와 가공식품(7.6%), 농축수산물(4.2%)의 오름폭이 가장 컸다.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률은 축산물(12.1%)이 견인했다. 글로벌 곡물 가격이 오르자 사료 가격이 급등한 여파다. 농산물 중에서는 포도(27%)와 배추(24%), 감자(32.1%) 등의 물가가 가파르게 뛰었다. 전날 기준 깐마늘(18.6%), 깻잎(22.5%), 고추(32%), 오이(10.6%) 등 가격도 1년 전보다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수박 한 개 가격도 1만 7944원에서 2만 1740원으로 21%나 뛰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가뭄 피해로 올 봄 감자 생산량은 전년 대비 10.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도매 시장에서 감자(20㎏) 가격은 전날 기준 3만 3720원으로 1년 전(2만 6840원)대비 20.4% 뛴 상태다.
글로벌 물류망 불안에 감자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 국산 감자 가격마저 뛰면서 식품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앞서 버거킹은 지난달 24일 일부 매장에서 감자튀김이 포함된 모든 세트 메뉴의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써브웨이도 지난달 웨지감자와 감자칩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패스트푸드 등 외식 업체에서 튀김용으로 주로 쓰는 북미산 감자 수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당장 다음날 감자튀김을 판매할 수 있을 지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급 상황에 맞춰 감자 메뉴 대신 콘샐러드나 치즈스틱 등을 대신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산 농산물 가격이 뛰자 수입량도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중국산 마늘 수입량은 3091톤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127% 증가한 규모다. 농촌경제연구원은 '6월 양념채소 관측동향' 보고서에서 "중국산 마늘 산지가격 하락으로 민간 수입 증가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건고추와 건조 및 냉동대파의 지난달 수입량도 1년 전 대비 각각 10.9%, 27.6% 늘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자영업자들은 서비스로 제공하는 채소의 양을 줄이거나 추가 요금을 받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에서 닭갈비 배달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34)씨는 "지난주부터 500원의 깻잎 추가 요금을 받고 있다"며 "상추가 무르는 여름 무더위가 오기도 전에 농산물 가격이 올라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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