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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선임기자의 관점] 尹, “반도체 육성” 드라이브…바이오·우주 등 10 여개 전략기술도 챙겨야

기술 패권 시대, 대통령·장관 등 연일 ‘반도체’ 행보 지속

인력 양성·세제 혜택 등 반도체 패키지 지원안 속속 마련 ?

반도체가 핵심 산업이지만 ‘편중 지원’ 우려 없도록 해야

과기계 “2차전지·AI·수소·로봇·사이버보안·양자도 핵심”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7월 30일 삼성전자 온양 사업장의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7일 국무회의에서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반도체 웨이퍼 등을 들고 20분간 ‘반도체의 이해 및 전략적 가치’를 주제로 특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반도체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풍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거론하면서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며 인재 양성이 절박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모든 장관들에게 “반도체에 대해 공부하라”고 했다. 국가 안보 자산이자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 지원에 모든 부처가 나서라는 주문이다.

윤 대통령의 언급은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시대에 국가전략기술 키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정작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대통령과 과기정통부 장관의 과학기술 행보가 반도체에 집중돼 있는데 반도체만 국가전략기술이 아니지 않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은 나름 선도형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AI), 수소, 첨단 로봇, 사이버 보안은 경쟁형, 양자,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은 추격형에 머무르고 있다. 모두 국가 생존과 미래 성장 동력 확충, 주요 5개국(G5) 도약의 토대를 닦기 위해 기술주권이 필요한 분야이다. 이 중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는 것은 반도체와 OLED 디스플레이 등 일부에 불과하다. AI·바이오·빅데이터·모빌리티·양자·로봇·우주항공 분야 등에서는 우리가 중국을 뒤좇아가는 형국이다.

먼저 유웅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인수위원이 각 부처와 협의해 작성한 ‘새 정부의 반도체 여건 및 정책 방향’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반도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짚은 뒤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위한 전체 밑그림을 소개하려고 한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자 국가안보 자산

반도체는 공장·자동차·스마트폰뿐 아니라 첨단 무기, 국방우주에서도 쓰임새가 고도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두 달 뒤 첫 과학기술 행보로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견학했다. 당시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와 이종호 소장으로부터 반도체 산업 흐름과 칩 제조 공정, 심각한 인력난 등에 대해 듣고 적극 공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그 뒤로 줄기차게 반도체 육성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달 20일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가장 먼저 찾은 곳도 경기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었다. 한미 동맹을 안보·경제·기술을 아우르는 동맹으로 격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우리는 2020년 약 5000억 달러(약 600조 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8.4%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플레이어”라며 “미국은 반도체 등 전략기술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과 한국 반도체 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했다.



◇미·중·일·유럽연합 등 반도체 육성 박차

미국은 약 25년간 상실했던 반도체 제조업의 리더십 부활을 꿈꾸며 지원 법안을 시리즈로 내놓고 있다. 미국 의회는 반도체활성화법(FABS Act), 미국혁신경제법(USICA)을 통과시킨 데 이어 반도체제조인센티브법(CHIPS Act)과 미국경쟁법(ACA)을 연내 처리할 계획이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개발(R&D) 기반의 산업 경쟁력은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에서도 강자(인텔)로 군림했으나 과거의 명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 20%를 목표로 설정하고 ‘EU 칩스법’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은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이 대당 5000억 원가량(풀옵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단독 공급하는 등 소재·부품·장비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번 유럽 출장길에 가장 먼저 ASML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도 소부장의 강점을 내세워 반도체 산업 경쟁력 회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은 세계 반도체 소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세계 반도체 장비 톱 10에 미국·유럽과 함께 다수 기업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을 소비하면서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기술 장벽이 높은 선단 공정 기술 개발에 한계를 절감하고 미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반도체 후공정 기술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신성장 분야인 화합물 반도체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인텔과 삼성전자 출신인 유웅환 박사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중국에 대한 전략기술 통제에 나서는 바람에 우리로서는 반도체에서 2년가량 시간을 벌었다”면서 “하지만 중국이 DDR4 반도체 양산 등 중저가 분야에서는 수년 내 한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韓, 메모리는 쫓기고 비메모리는 취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강자이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큰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후발 주자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서 대만의 TSMC에 크게 밀리는 게 단적인 예다. 메모리에서는 초격차 확보, 비메모리에서는 빠른 추격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8월 시행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미국·유럽의 칩스법에 비해 반도체 산업 육성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유 박사는 “메모리 시장은 장기적으로 결국 중국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비메모리를 키우려고 하자 미국이 수년 전부터 우리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나섰는데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반도체 원천 기술 특허를 많이 갖고 있는 반면 우리는 원천 특허는 물론 소부장 산업에서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도 부지 매입 등으로 난항을 겪다가 이르면 이달 말 착공할 예정이다. 그만큼 속도가 늦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 유지, 파운드리 분야의 선도국 추월, 5G·6G 초저지연 환경 적합 반도체 시장 선도를 역설했다.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R&D·시설 투자 세액공제, 전력·물·폐수 처리 시설 등 인프라 신속 지원, 미래차·AI·6G·로봇·사물인터넷(IoT)·가전 등 차세대 반도체 산업 지원 확대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현장과 맞지 않는 규정에 대한 규제 혁신이나 반도체 설계·제조·후공정을 아우르는 대·중소기업 생태계 구축도 주문했다. 정부가 지난해 5월 2030년까지 판교-기흥·화성·온양-용인·이천·청주로 이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K반도체 벨트’ 건설 계획을 밝혔듯 집적화된 R&D·제조 클러스터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황 회장은 “반도체 소부장 지원과 중소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지원, 미국·일본 등과의 통상 협력 강화, 특허 등 지식재산(IP) 보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 혁신 안돼 반도체 인력 부족 심각

정부와 업계는 앞으로 8~10년 내 약 1만 5000~3만 명의 반도체 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인력 배출은 제한적이다. 교육부의 ‘복지부동’과 대학의 ‘철밥통’ 문화가 겹쳐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한 탄력적 대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근 서울과학기술대 지능형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국내 대학의 반도체 관련 교수 정원은 늘지 않고 석·박사 과정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오히려 감소하는 게 현실”이라며 “기업이 기술 공유를 꺼려 인력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반도체와 지원 기술 인력 10만 명 양성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학생의 정원 확대와 별도 정원 운영, 계약학과의 수도권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연대·공대의 반도체 미전공 학부·석사 과정생에 대한 반도체 교육과 과학고·영재고 등 중고교생의 조기교육 방안도 내놓았다. 테크노파크(19개), 창조경제혁신센터(19개), 메이커스페이스(213개) 등을 교육장으로 활용할 경우 최소 연 1만 명 이상의 인력 양성도 기대했다.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 방지를 위한 소득세 감면과 외국인 기술자에 대한 세금 감면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KISTEP 분석(2020년) 등




◇다른 국가전략기술 육성에도 관심 기울여야

이정동 전 청와대 경제과학특보(서울대 공대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일본·EU까지 기술주권의 새 판 짜기 가속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는 반도체를 빼면 해외 협력이 가능한 전략적 알박기 기술이 있는지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보기술(IT)보다 시장이 10배가량 큰 바이오의 경우 중국은 신약 개발 등에 거액을 투자하며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AI 분야에서도 미중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2차전지 배터리도 중국·일본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5G·6G는 미국·일본 등에 대한 핵심 단말·부품 의존도가 높다. 수소도 수소차·연료전지 기술 수준은 높지만 수소 생산 기술은 열세다. 차세대 원전에서도 미국·러시아·중국·영국 등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우주항공에서는 미·중·일·유럽 등 선도국과 차이가 크다. 양자암호통신과 양자컴퓨팅 등 양자 기술, 사이버 보안 역시 마찬가지다. 자율주행차 등 모빌리티와 로봇도 발 빠른 추격이 필요하다. 한국계 미국인인 류봉균 에피시스사이언스 대표는 “한국의 R&D 풍토는 주어진 과제는 잘하지만 도전하고 실패를 관리하는 문화·생태계는 크게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임혜숙 전 과기정통부 장관(이화여대 교수)은 “국가전략기술을 잘 키우려면 과학기술디지털부총리제를 도입하고 민간 전문가 중심의 국가 R&D 기획·관리 시스템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박사는 앞으로 다양한 전략기술을 키워 5년 동안 100만 개의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규제 혁파, 노동 개혁, 교육 혁명, 산학연 R&D 대혁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확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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