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사진) 뉴욕시립대 교수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20일(현지 시간) 자 NYT에 쓴 ‘인플레이션에 대해 나는 틀렸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자신의 과거 전망이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직후 코로나19에 대응해 1조 9000억 달러(약 2500조 원) 규모의 부양책을 펼쳤을 때 ‘미국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겁먹을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그를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는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해 낙관적 시각을 보였다. 미국인들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더라도 곧바로 소비하는 대신 저축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지방 정부에 대한 지원금 역시 수년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과거 사례들을 감안했을 때 국내총생산(GDP)과 고용 시장의 일시적 과열 역시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미국은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9%를 돌파할 정도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예기치 못한 물가 상승을 일으킨 가장 강력한 변수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사회 변화다. 그는 실제 저축 규모나 지방정부 지출, 고용 수준 등 당시 낙관론의 토대가 됐던 근거 지표들이 예측과 비슷하게 나타났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이상하게” 물가가 치솟았다면서 코로나19라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과거의 경제모델을 대입한 것이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우선 과거와 달라진 가계 소비 패턴이 인플레이션에 가속도를 붙였다. 감염 우려와 생활 방식의 변화로 서비스 지출이 줄고 상품 구매가 폭증한 가운데 발생한 ‘물류 대란’이 글로벌 공급망 혼란을 가중시켜 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발 조기 퇴직, 이민자 감소, 육아 공백 등에 따른 노동력 부족 현상이 대대적인 임금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
과거에 비해 지난해 경기가 훨씬 과열됐다는 점도 기존 모델의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밖에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상하이 봉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대외 변수 또한 예측이 빗나가는 데 한몫했다. 다만 크루그먼 교수는 앞으로의 물가 동향에 대해 “많은 경제 전문가가 이미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지났거나 꺾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몇 달 뒤에는 상황이 덜 혼란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 모든 경험은 결국 ‘겸손’에 대한 교훈이었다. 나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과거의 경제모델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지난해에도 같은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편리하게 느껴졌다”면서 “그러나 돌이켜보면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세상 앞에서 그런 방식의 추론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음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