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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24시]한·중 수교 30주년과 우리의 고뇌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韓, 中과 교류로 경제성장 이뤘지만

美 IPEF·칩4동맹 앞세워 공조 압박

정부 주도 국민국가시대 종말 예고

국가 발전목표 명확하게 설정해야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8월 24일이 한중 수교 30주년일이다. 30주년 기념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세대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난감해 하는 장면을 보이기 일쑤다. 지난 30년 우리 발전은 상당한 정도 북방정책의 성과물로 칠 수 있다. 우리 발전에 한미 동맹이 1등 공신이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을 통한 수출선 유지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기술 습득을 통한 인공위성의 발사도 있었다. 결국 미·중·러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 이상의 경제 통상 대국의 하나로 발전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미국이 갑자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칩4 동맹 등을 제기하고 있다. 혼란스럽다.

지난 300년간의 발전은 인류 전체가 봉건제·군주제 등 특권층을 타파하고 일반인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과정이었다. 한때 특정 나라를 따라잡자는 의식이 강했다. 강대국들이 롤모델이 됐다. 역할도 컸다. 부국강병이 중시되던 국민국가 시대였기 때문이다. 세계가 어느 정도 살만큼 되었다. 국가들이 복잡다단하게 연결돼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처럼 가까웠다. 연간 여행객 수 15억 명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팬데믹이 잠잠해지자 바로 여행객이 폭증했다. 코리아타운 등 타국 내 집거촌들도 많이 생겼다. 그만큼 세계는 차별화보다는 동조화를 통해 수렴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특정 국가들과만 짝짓기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쉬운 방향이 아니게 돼버렸다.

세계는 아직도 국민국가 시대의 연장에서 이념적 혼돈을 겪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가 계획경제보다 우월했다는 것은 이미 판명됐다. 경제 활동에서 시장 기능, 규모의 경제, 인센티브 부여, 비교 우위의 중시 등 4대 논리가 핵심이었다. 미국 성공의 바탕이었다. 이를 활용한 산업화·도시화·서구화·민주화가 인류를 여기까지 발전시켜왔다. 특히 14억 인구의 중국이 계획경제의 껍질을 벗고 시장경제의 4대 논리를 철저히 답습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전 세계의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가 됐다. 간접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우위성도 검증됐다.



문제는 정부의 위상이 계속해서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존재감의 약화다. 국제 관계에서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국가 긴급 재난 사태라 정부가 지휘소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예외적 상황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재화의 수요·공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결국은 정부가 경제 영역에서 특정 산업 분야를 정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재정·금융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정부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한편 전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 도래에 대한 공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빅스텝의 경쟁도 있다. 이 공포는 실은 강대국 정부 정책 실패의 산물이다. 미국의 리먼 사태 이후의 천문학적인 돈 풀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 코로나 제로를 위한 중국의 봉쇄가 핵심 요인이다. 미국이 공급 사슬 재편에 나선 것도 한몫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등장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대두 등은 정부 주도의 국민국가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탈국민국가 시대로 가는 과도기는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도 국가 발전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국내적으로 전통적인 해법에 극도의 상상력이 동원돼야 한다. 특정 산업뿐 아니라 인적 요소를 중시해야 한다. 가령 논란이 되고 있는 MZ 세대를 포함한 세대 맞춤형 정책을 펼 여지는 충분히 있다. 각계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대외적으로도 미·중·러가 머리를 맞대고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게 해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들 국가에 당당하게 상기시켜 줘야 한다. 중국에도 단순히 강대국화가 답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최악의 경우 신냉전의 폐해는 고스란히 인류 전체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 한중 수교 60주년 때 즈음에는 더 나은 세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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