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항에 내려 차로 고속도로를 따라 40분간 달리면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산과 선인장들 사이로 대만 TSMC의 팹 건설 현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적조차 없는 사막이지만 2년 뒤면 최첨단 5㎚(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가 생산돼 미국의 주요 빅테크들에 공급될 예정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TSMC의 공장이 들어서는 애리조나가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애리조나주 정부에 따르면 현재 이 곳에 자리 잡은 반도체 기업만 무려 200곳에 달한다. 여기에 인텔도 20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2개 라인 증설에 나서면서 인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카일 스콰이어스 애리조나주립대(ASU) 공대 학장은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TSMC와 인텔의 확장으로 전 세계 인재들이 애리조나로 몰려들고 있다”며 “우수한 인재를 먼저 유치하려는 기업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전했다. 산학 연계 프로그램 등에 힘입어 현재 2만 7000명 수준인 ASU 등록 학생은 올가을 3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스콰이어스 학장은 “우리 목표는 인텔·TSMC와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가장 영향력 있는 공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팍스테크니카(Pax Technica·기술 패권)’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 세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막대한 예산 투입은 물론 비자 제도까지 고쳐가며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글로벌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천인·만인계획에서 보듯이 파격적인 인재 유치 전략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암울하다.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의 ‘2021년 세계인적자원경쟁력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위에 그쳤다. 고등교육의 외국인 유입률(2.8%)은 33위로 최하위권이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 이공계 기피까지 겹쳐 기술 전문인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4~2028년 과학기술 인력난이 지금의 60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신기술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데 인재 양성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승우 대한전자공학회 회장은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땜질식 인력 양성으로는 미래의 인력 수요에 대응할 수 없다”며 “대학 교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편해 기술 인재의 풀을 넓히고 정부도 예산·세제 지원과 함께 기업과 대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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