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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그해 여름, 이순신 장군을 추앙한다

■ 박태준 문화부장

'한산' 개봉 닷새 만에 200만명 돌파

전편 '명량' 대기록 다가설지 주목

대통령 지지율 20%대로 추락한 현실

국민들 올해도 영화서 위로 받을 듯





폭염 속에 휴가를 보냈던 지난주 저녁에 영화 ‘한산:용의 출현’을 개봉 첫날 관람했다.

익숙한 한산대첩의 스토리와 학익진의 장관을 연출자와 배우들이 어떻게 펼쳐 냈을까 하는 기대감이 앞섰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성패를 좌우할 텐트폴 중 하나인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직업적 호기심도 약간 겹쳤다.

영화는 걸음을 재촉한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실제 바다에서는 단 한 장면도 찍지 않았다는 51분간의 해전은 시원하고 통쾌했다. 충파로 적선을 거침없이 부수는 거북선의 활약은 언제나 열광했던 아이언 맨의 등장보다 짜릿했다. 99개국에 선판매됐다는데 외국인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감독의 말처럼 전작과 달리 신파를 깔끔히 걷어낸 연출에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주말을 지나며 이미 200만 고지를 넘어선 ‘한산’은 국내에서 몇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부를 수 있을까. 그 대목이 궁금한 것은 전작 ‘명량’의 스코어 때문이다. 1761만 명, 아직 국내에서 깨지지 않은 흥행 기록이다. 당시 N차와 단체 관람이 이어졌고 모든 연령대를 아울렀다. 개봉 무렵에 호평과 함께 혹평 역시 만만치 않았던 작품이 날을 거듭할수록 신드롬을 일으켰다.

국내 극장에서 관객 1000만 명을 넘어서려면 작품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의 향수에 젖은 50대에 이어 MZ세대까지 극장을 찾은 ‘탑건:매버릭’도 이제 700만 명을 갓 넘었을 뿐이다. 결국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는 그 무렵의 사건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작품의 메시지와 겹쳐졌을 때 흥행의 임계치를 넘어서게 된다.

‘명량’이 개봉했던 그해 봄에는 세월호가 있었다. 팽목항의 비극으로 이 땅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모두가 참담했던 2014년 여름, 다시 마주한 이순신 장군은 우리가 꿈꾸던 진정한 리더의 표상이었다. 정치적 리더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성웅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22년의 여름에도 국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순신 장군을 만나려고 할까. 요즘 분위기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게 개인적인 전망이다.

불안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결국 지난주에 이어 주초에도 20%대로 내려앉았다. 취임 80일 만에 28%라는 대통령 지지율은 신기록이다. 신기록 경신의 비결도 조목조목 다양하다.

‘내부 총질’ 문자가 상징하는 여권의 분열, 경찰국 신설로 불거진 행정부의 갈등, 인사로 검증된 무능과 자질 부족, 뒷전으로 밀린 경제와 민생. 대통령이 부르짖던 ‘공정과 상식’은 ‘불공정과 몰상식’이었다는 조롱을 받는다. 여전히 남은 5년, 조금은 나아지고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올 여름에도 국민들은 헌신하고 고민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극장에서나마 만나 헛헛함을 채우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실에서는 실망감을 돌이킬 길이 막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산’ 속 이순신은 외로워 보였다. 의주로 도망친 임금 밑에서, 늘 의심하는 군관들과 두려움에 떠는 백성들 틈에서, 왜군을 기다리던 견내량 바다 위에서 그랬다. 그 스스로의 외로움 속에서 그는 진중하고 침착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태산같이 진중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물령망동 정중여산)’는 그의 어록이 실제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스쳤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인용하는, 대통령도 지난해 국민의힘 입당 전 입에 올렸던 이 명언을 그들이 새삼 곱씹어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어찌 됐든 우리는 지금도, 가슴 아팠던 그날에도, 그해 여름 이순신 장군을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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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자 문화부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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