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방문한 경기도 부천시 소재의 한 유명 뷔페형 음식점. 손님들로 붐비는 저녁 시간이지만 서빙 일을 맡은 직원은 단 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 대신 서빙로봇 여러 대가 테이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빈 그릇을 수거하기 바빴다. 테이블에 설치된 호출 버튼을 누르면 바로 달려와 그릇을 가져가는 로봇의 이름은 푸두봇. 중국에서 건너 온 인공지능(AI) 서빙로봇이다.
자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산 로봇이 국내 요식업과 산업 현장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서빙로봇 시장은 이미 중국산 로봇들이 대부분을 점유했고 물류 시장도 중국산의 기세가 높다. 값싼 가격을 앞세운 중국 로봇의 무차별적 공습에 국내 로봇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만난 한 국내 로봇 제조사의 대표는 “중국산 서빙로봇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변 식당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서빙로봇 10대 중 8대가 중국산 제품인 셈이다. 로봇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돌아다니는 실내 서빙로봇은 사실상 거의 중국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결국 가격이 제일 큰 문제인데 저가 로봇 양산이 가능한 중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쥐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서빙로봇의 선두에는 푸두로보틱스가 버티고 있다. 2016년 중국 선전을 기반으로 설립된 중국의 로봇 제조사 푸두로보틱스는 낮은 원가의 서빙로봇을 전면에 내세워 한국 시장을 공략해왔다. 푸두로보틱스는 올 5월까지 약 2000여 대에 달하는 서빙로봇을 한국 시장에 보급했고 홈플러스와 LG전자·쉐라톤호텔·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한 유수 기업들과도 협업한 이력이 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등장한 로봇마저도 푸두로보틱스 제품인 ‘벨라봇’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 로봇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글과컴퓨터그룹 계열사인 한컴인스페이스는 중국의 대표적인 서비스 로봇 기업 키논로보틱스와 협약을 맺고 함께 실시간 로봇 관제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우아한형제들이 내년 진행될 테헤란로 배송 로봇 실증 사업에서 활용하겠다며 선보인 ‘딜리 드라이브’도 중국의 로봇 제조사 젠로보틱스의 하드웨어에 자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로봇이다.
물류 로봇 시장에서도 중국산 제품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로봇 전시회가 여러 차례 열렸는데 긱플러스와 비전나비를 비롯한 중국 로봇 기업들이 지게차형 물류 로봇을 대거 출품했다. 현장에서는 물류 로봇 시장의 60% 이상을 중국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로봇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규제가 느슨한 중국 기업들이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며 물류 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이 지속적인 부담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의 로봇이 발 빠르게 한국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꼽힌다. 중국 특유의 대규모 생산 시설과 저렴한 인건비를 발판 삼아 가격 경쟁력에서 승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양산 단계에 돌입한 중국산 로봇들은 국내 제품들과 비교해 심한 경우 절반까지, 통상적으로는 30% 정도 낮은 가격을 갖추고 있다는 게 로봇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탄탄한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서비스·물류 로봇을 포함한 로봇 산업 전반에 대한 본격 육성에 나섰다. 2019년 지능형 로봇 개발에 5억 7700만 달러(약 7549억 원)를 투입한 중국 정부는 현재 상하이와 베이징·선양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10곳에 달하는 로봇 산업 클러스터를 두고 있다. 각종 보조금과 환급금 혜택도 지급하고 있어 중국 로봇 기업들로서는 기술 개발에 총력을 다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상황이다.
실외 배달 로봇의 경우 아직 ‘중국발 로봇 공습’을 염려하기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 기반으로 로봇의 위치 추정(로컬라이제이션)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실외 배달 로봇의 특성상 해외 기업이 짧은 시간에 국내 환경에 맞춘 고성능의 제품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아한형제들이 이미 젠로보틱스와 활발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고 중국산은 아니지만 KT 역시 러시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얀덱스와 손잡고 배송 로봇 시장 공략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이 마냥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산 로봇 도입이 급증하면서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자율주행 로봇이 수집한 데이터가 고스란히 중국 정부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중국 기업들이 데이터 소유권을 달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며 “서빙로봇의 경우 탑재된 카메라를 이용해 호텔이나 식당 등지에서 취득한 영상과 이미지를 이미 넘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중국 로봇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한 로봇 제조사의 대표는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완전 자율주행과 서비스 관련 기술을 중점 개발해왔다”며 “마커 기반이 아닌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서빙로봇을 개발하는 한편 키오스크, 테이블 오더와 같은 다양한 외식업 시스템과 로봇을 연동해 더욱 편리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경준 로봇산업협회 본부장은 “중국 로봇 기업들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연구개발(R&D) 지원과 실증 확대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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