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A 씨는 싱가포르개발은행(DBS)에서 운영하는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호주 멜버른 여행 준비를 한 번에 끝냈다. A 씨는 두 달 전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결제했다. 결제를 마친 뒤 하루가 지나고 DBS로부터 A 씨에게 적합한 여행자 보험 상품을 추천 받았다. 일주일 뒤에는 해외에서 사용 가능한 카드를 안내 받았다. 환율 설정 기능을 통해 출발하기 전까지 원하는 환율에 환전할 수 있도록 알람도 받을 수 있었다. 출발 일주일 전에는 해외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카드를 설정해야 한다는 안내 메시지도 왔다. 일하느라 깜빡할 뻔한 것들까지 A 씨가 준비할 수 있도록 DBS의 마켓플레이스는 꼼꼼히 안내했다. 대신 DBS는 자사의 여행자 보험, 환전, 신용카드를 판매했다.
DBS의 대표 애플리케이션인 마켓플레이스가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은행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된 마켓플레이스는 부동산, 자동차, 여행 및 레저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싱가포르에서 마켓플레이스 앱 하나만 가지면 생활에 불편이 없다고 할 정도다. 마켓플레이스는 금융-비금융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 시대에 국내 은행들이 벤치마킹하는 독자적 종합 금융 플랫폼의 성공 모델로 손꼽힌다. DBS SG 에코 시스템 및 마켓플레이스의 다이앤 창 상무는 “2017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해 코로나19에도 급성장했다”며 “최근 2년 새 마켓플레이스를 통한 거래가 125% 증가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DBS의 마켓플레이스는 부동산, 주택 리모델링, 교육, 여행 및 레저, 자동차, 헬스케어 등 여섯 가지 분야에서 다른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켓플레이스가 선정한 6개의 분야는 생활비에서 70%를 차지할 정도로 일상생활 대부분의 서비스들이다. DBS가 고유의 여신·수신 업무를 넘어 생활 밀착형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싱가포르 통화감독청(MAS)의 은행 업무 관련 규제 완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2001년 은행이 핵심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은산 분리 규제를 도입해 운영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덮쳤던 2017년 싱가포르는 금융 산업의 미래를 디지털에 두고 인터넷은행의 주주 구성에 산업자본에 대한 지분 제한을 없애는 등 규제 철폐에 나섰다. 이와 함께 은행이 핵심 업무를 보완할 수 있는 비금융 사업을 하도록 감독 당국의 사전 승인을 없애고 온라인 유통업 등의 사업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금융권에서도 디지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금융 사업에 진출하는 빅테크에 맞서 기존 금융회사들이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싱가포르 금융사들의 의견에 싱가포르 감독 당국이 화답한 것이다.
규제 완화 덕에 출시한 DBS의 마켓플레이스는 분야별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DBS의 플랫폼에서 예약부터 결제, 지급까지 한번에 가능하도록 구현됐다. 서비스 과정에서 DBS는 금융 소비자에게 결제·카드·대출·보험·투자 등을 연결해줌으로써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가령 마켓플레이스에서 집 리모델링을 신청한 고객에게 DBS의 대출 상품을 소개해주고 대출 시 와이파이 설치를 무료로 제공하는 식이다.
시너지 효과에 따라 마켓플레이스는 은행의 주요 수익원의 하나로 톡톡히 역할을 하는 분위기다. 마켓플레이스를 기반으로 한 뱅킹 서비스의 수익은 2020년 대비 2021년 12배 증가했다. 창 전무이사는 “싱가포르 국민의 90%가 쓰는 은행이라는 점에서 DBS의 마켓플레이스를 이용하려는 유인이 크다”며 “테슬라가 처음으로 DBS의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그린론(전기차 대출)을 제공하는 등 전 세계 전기차 제조 업체에서 먼저 연락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국의 독자적 종합 금융 플랫폼 모델도 국내보다 한발 앞섰다. 태국 시암상업은행(SCB) 계열사인 퍼플벤처스를 통해 음식 배달 서비스인 ‘로빈후드’를 202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음식 배달을 시작으로 지난해는 여행 서비스를 도입했고 올해 9월에는 장보기 서비스를 추가 운영할 예정이다. 대형 마트뿐만 아니라 정육점, 약국, 화장품 가게, 애완견 용품 가게, 문방구 등 지역의 작은 가게들을 연결하는 게 핵심이다. 이미 3000여 개의 가게와 제휴를 마친 상황이다. 이 외에도 SCB와 퍼플벤처스는 각종 퀵 서비스 및 택시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은행이 자회사를 통해 음식 배달, 교통, 쇼핑 영역의 서비스를 직접 운영할 수 있는데 태국 중앙은행(BOT)에서 이를 허가해준 덕분이다. SCB 측은 “태국에서도 6·7년 전부터 규제를 완화는 분위기”라며 “은행은 은행 본연의 업무를 하되 (그룹 내) 다른 회사를 만들어서 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를 통해 SCB와 퍼플벤처스는 비금융 서비스에 참여하는 사업자에게 대출을 주선해주고 은행의 결제 시스템을 활용해 기존 정산보다 일정을 앞당기는 등 뱅킹 서비스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사업을 하는 점도 은행과의 시너지 효과를 더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랩푸드(그랩), 푸드판다(딜리버리히어로), 라인맨(라인) 등 기존 정보기술(IT) 회사가 태국에서도 활발히 서비스하고 있는 와중에 로빈후드는 서비스를 출시한 지 2년도 채 안 됐지만 고객 310만 명, 매일 주문 15만 건을 확보했다. 매년 고객은 20%씩 증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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