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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술 안 마신다고?…No, 당신과 안 마실 뿐"[인더뷰]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 인터뷰

‘노재팬, 종량세 통과, 코로나19’로 매출 '쑥'

당분간 IPO 계획 없어…"내실에 집중할 것"

‘다양성 세대를 위한 종합 주류 회사’로 키우는 것이 꿈









“진라거는 라면맛 나는 맥주가 아닙니다. ‘진한 라거’라서 진라거예요.”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에게 진라거는 아픈 손가락이다. 진라거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2021년 9월 진라면의 제조사 오뚜기와 협업해 출시한 제품으로, 진라면과 닮은 외관 때문에 ‘라면 맛이 날 것 같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실제로 호불호가 크게 갈린 평을 받았다.

지난 12일 서울 성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본사에서 어썸머니 인더뷰 팀과 만난 김 대표는 “한국 라거는 다소 묽어서 진한 라거를 만들고 싶었다”며 진라거 개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진라거의 디자인은 진라면의 패키지를 똑 닮았지만 맛에는 회사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맥주의 원액 자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제품을 오마주해 만든 제품”이라며 "판매량은 부진했지만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는 가장 매출이 좋았던 제품으로 양조사나 맥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았다”고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맥덕들이 만든 맥주 콘텐츠 기업, 성수동 ‘핫플’이 되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첫사랑’, ‘성수동 페일에일’ 등 자체 제조한 수제맥주로 맥주 덕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수제맥주 스타트업’이다. 수제맥주 펍(PUB)으로 시작해 ‘진라거(오뚜기)’, ‘482에일(에버랜드)’, ‘솟솟(코오롱스포츠)’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한 ‘커스텀 맥주’를 선보이고 있으며 사실상 지금과 같은 ‘힙’한 성수동을 만든 주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수동에 있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김도연 기자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제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다양성’이다. 초창기에 김 대표가 첫 번째 브루어리 장소로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도 ‘다양한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2014년 주세법 개정 이전까지 소규모 양조장의 외부 유통은 불가능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는 양조장 업장 내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은 ‘하우스 맥주’만 즐길 수 있었고, 수제맥주 전문 기업을 창업하는 건 한계가 명확했다. 하지만 2014년 4월 주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외부 유통 금지’ 조항이 풀리면서 스토리가 180도 달라졌다. 소규모 양조장이 다른 식당과 술집에 술을 유통할 수 있게 된 것. 김 대표 역시 속전속결로 창업을 진행했다.

홈브루어 출신의 맥주 덕후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그 시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함께 레시피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맥주 레시피라는 콘텐츠가 제조업으로 이어졌으니 콘텐츠 기업이라 해도 무방하다. 특히 브루어리를 ‘초소형화’를 택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200L(리터)만 생산하는 배치 사이즈로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 B2B(기업간거래) 중심으로 영업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여기가 맥주 가게냐’며 성수동 브루어리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많은 주목을 받자 결국 김 대표는 성수동 양조장을 ‘안테나 숍’, ‘플래그십 스토어’로 전환하며 B2C(기업소비자간거래) 사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9년 이천에 양산형 브루어리를 지어 도매나 편의점으로 유통하며 본격적으로 B2B를 확대했다.

노재팬, 코로나19… 준비된 기업엔 악재도 호재


운도 따랐다. 대표 상품 ‘첫사랑’, 편의점에 납품한 ‘서울숲’과 ‘노을’ 등 회사의 대표 제품은 2019~2020년 사이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이유로 김 대표는 세 가지 사건을 꼽았다.

우선 ‘노재팬으로 인한 일본 맥주 불매 운동’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노재팬 시기에 국내 일본 맥주 총수입액은 90% 이상 급감했다. 그로 인해 수제맥주가 파고들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다음으로는 ‘주세법 개정으로 인한 종량세 통과’다. 개정되기 이전까지 맥주에 대한 과세 체계는 ‘종가세’였다.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는 소형 맥주 회사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소형 맥주 회사가 만든 맥주는 비쌌기 때문에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기업 맥주가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세 체계가 맥주 용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전환되면서 소형 맥주 회사가 대기업 맥주 회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끝으론 ‘코로나19’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주류 소비 패턴이 ‘술집’에서 ‘집’으로 바뀌면서 혼자 술을 마시거나 집에서 가족과 술 마시는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공사가 발표한 ‘2020 주류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술 마시는 장소가 바뀌었다는 응답은 전체의 65.7%였다. 집에서 마신다는 응답은 87.3%로 1위를 기록했다.



종합해보면 일본 맥주가 빠져준 자리에 수제맥주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코로나19 발발로 집에서 술 마시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마트와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수제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다. 김 대표는 “2021~2022년은 사람들이 수제맥주 신제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지겹다고 말할 정도까지 성장했다”며 “그동안 수제맥주 시장이 얼마나 억눌려있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쟁사는 OB…대량생산보다는 의미부여가 관건


낭만적인 시작이지만 경영의 세계는 냉정한 법. 기업이라면 모름지기 돈을 벌어야 한다. 과연 수제맥주만 파는 게 돈이 될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두 가지 대답을 내놨다.

우선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더 이상 수제맥주에만 국한된 회사가 아니다. 지난 4월, ‘마크홀리 오리지널 6.0’과 ‘마크홀리 오리지널 10.0’이라는 막걸리 2종을 출시하며 주종을 확장했다. 김 대표는 수제맥주 회사에서 나아가 ‘종합 주류 회사’로 변신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또한 맥주 자체의 정체성,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도 김 대표만의 전략이다. 경쟁사로 꼽은 대표적인 맥주 기업 ‘OB맥주’를 이기기 위한 방안으로 역시 ‘다양성’을 내세웠다. 김 대표는 “수제맥주, 수입 맥주, 대기업 맥주의 구분은 우리끼리만 의미가 있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맛있는 맥주, 가격 대비 품질 좋은 맥주, 안 마셔본 신기한 맥주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가격이나 소맥용 맥주로는 OB맥주를 이길 수 없다”면서 “대량 생산, 대량 판매가 하지 못하는 ‘다양성’과 ‘취향’을 노리겠다”고 설명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에서 생산한 다양한 맥주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제공


김 대표는 “대량 생산, 대량 판매가 반드시 수익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확신에 가득찬 눈빛으로 답했다. 그는 “오히려 그 시대보다는 희소성과 의미부여를 중요시하는 세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다. 원소주는 지난 2월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진행된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며칠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 ‘원소주 오픈런’, ‘원소주 오픈런 성공팁’ 후기글이 쏟아질 정도로 M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원소주 현상’을 희소성과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으로 봤다. 김 대표는 “회사 내 배치 사이즈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브루어리 시스템이 네 가지가 있다”며 “이를 활용해 마니악하고 니치마켓인 것부터 대중적인 것까지 다양하게 만들어 시장의 점유율을 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양성은 실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커스텀 맥주’와도 연관된다. 작은 호텔, 놀이공원, 골프장 등 다양한 기업을 위한 맞춤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소형화 다양화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큰 회사는 큰 제품만, 작은 회사는 작은 제품만 만드는 것에 반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여러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며 “대기업과 큰 외국계 기업은 할 수 없는 것을 소화하고 풍부한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큰 장점이자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다양성 세대를 위한 종합주류기업”


수제맥주의 인기는 코로나19로 인한 홈술족 증가, 높은 물가 등으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제주맥주는 지난 5월 자금을 끌어모으는 방안으로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다른 전략을 택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시장이 워낙 좋지 않아 IPO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다”며 “이번 불황은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아 지금은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도연 기자


오프라인 매장 또한 증설할 계획이 없다. 당분간은 성수점에 집중하고, 그간 하지 못했던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대표적인 브랜드 ‘첫사랑’의 마케팅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그럼에도 해외 진출은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올해 처음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최근 대만 세븐일레븐에 진라거, 서울숲, 노을 3종을 수출했고 중국, 홍콩, 호주의 도매·특수채널과도 손을 잡았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아시아 인근 국가들 중심으로도 수출 지역을 확대할 생각이다. 대만 세븐일레븐에서는 오는 9월부터 맥주 3종을 만나볼 수 있다.

김 대표는 향후 주류 시장이 ‘전체적으로는 정체, 수제 맥주 시장은 고공행진’의 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요즘 애들은 술을 안 마신다며 윗세대가 하소연하지만 전체 주류 시장은 작아지지 않는다”며 “당신과 안 마실 뿐이고 혼자 또는 친구들과 다양하게 마시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축소된 회식으로 부진한 소주·맥주 판매가 수제 맥주, 와인, 전통주 등의 ‘다양성 주류’로 넘어가 전체 주류 시장은 증감이 없는 상태로 유지된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를 ‘다양성 세대를 위한 종합 주류 회사’로 정의하며 이같이 말했다. “과거엔 획일성, 생산성, 효율성 중심의 사람들을 위한 맥주 회사가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역량, 새로운 비전,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주류 회사가 1등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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