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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발효의 味學…씨간장에도 '족보'가 있다

■ 감칠맛 풍부한 전통 간장, 세계화를 꿈꾸다

과거 명절에만 사용한다는 귀한 장

햇간장에 한 종지 넣어 맛·향 복제

오래 숙성될수록 깊은 치즈향 '솔솔'

수백년 묵은 씨간장 가치는 1억원

"맛있는 진간장 골라야 진짜 씨간장"

문화 류씨 종부 김종희씨 강조

김장 이어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

간장은 발효 기간이 길어질수록 짙어진다. 왼쪽부터 청간장, 중간장, 진간장, 15년 된 씨간장.




충북 청주 문화 류씨 시랑공파 류정항 종가의 김종희 종부.


충북 청주 문화 류씨 시랑공파 류정항 종갓집. 오래된 한옥을 천천히 둘러보며 고즈넉한 분위기에 푹 빠져있던 그때 반전의 냄새가 코 속으로 훅 들어왔다. 머릿속에 프랑스의 전원이 불쑥 떠오르는 치즈 냄새였다. 고소하면서도 고릿한 냄새를 따라가자 항아리 수 백 여 개가 눈 앞에 펼쳐졌다. 냄새의 정체는 전통 간장. 문화 류씨 종부인 김종희씨는 "잘 발효된 간장에서는 마치 영국의 블루 치즈와 같은 냄새가 난다"며 "콩과 소금, 물로만 만들었지만 3년 이상 자연 숙성을 거치면 와인과 같은 깊이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통 장류가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세계화를 꿈꾸고 있다. 수 천 년 역사를 지닌 한국 발효 식품 문화의 대표 격인 전통 장을 전세계 식탁에 올리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그 첫 걸음으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2024년께 최종 등재가 결정되면 2013년 먼저 이름을 올린 ‘김장 문화’와 함께 K푸드의 뿌리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간장과 고추장, 된장의 수출액은 8237만 달러(한화 1100억 원)으로 2018년의 6044만 달러보다 36% 증가했다. 특히 2015년 1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간장 수출액은 외국인 셰프들이 한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올해 2000만 달러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삼국 시대부터 간장을 만들어 먹은 우리나라는 1980년대만 해도 김장처럼 일 년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여 집에서 장을 담그는 문화가 익숙했다. 전라남도는 날이 선선한 음력 1월 정월에, 충청 지역은 삼짓날인 음력 3월 3일에 주로 장을 만들었다. 날짜도 '손 없는 날'을 고르고 골라 선택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충북 청주 문화 류씨 시랑공파 류정항 종가댁




전통 간장은 흔히 '조선 간장'으로 불린다. 종갓집에서는 벌레 먹지 않은 국산 콩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 메주를 쑤고, 3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과 깨끗한 물로 집 간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간장이라고 다 같은 간장이 아니다. 발효 시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 숙성한 간장은 청간장, 3~4년 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묵힌 간장은 진간장으로 불린다. 발효 시간이 길면 길수록 색이 짙어지고 짠 맛보다 구수한 맛이 살아난다. 미역국 등 맑은 국물 요리에는 햇간장을 쓴다. 반면 중간장은 나물이나 찌개 같은 일상 반찬을 만드는 데 쓰인다. 5년 이상 숙성시켜 진한 진간장은 갈비찜이나 불고기 등 색이 중요한 요리에 주로 활용된다.

이 같은 간장 외에 또 하나의 간장이 존재한다.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오래 묵힌 진간장 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간장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간장을 말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맛의 씨'가 되는 역할을 한다. 간장을 담글 때 씨간장 한 종지를 첨가하는 '덧장'을 하면 씨간장에 남아있는 유익균이 옮겨가 맛과 향이 그대로 복제되는 방식이다. 양이 줄어든 만큼 진간장을 씨간장에 부어 늘 같은 양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종갓집은 최소 100년부터 600년까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씨간장을 보유하고 있다. 김치처럼 집집마다 고유의 맛을 내기 때문에 일종의 '간장 족보'인 셈이다. 오래된 씨간장 한 항아리는 1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간장은 옹기채 훔쳐간다’는 말이 있는 이유다.

충북 청주 문화 류씨 시랑공파 류정항 종가댁에서 만든 씨간장.


과거 씨간장은 일 년에 단 한번 명절에만 직접 요리에 사용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외국 유명 레스토랑에서는 손님들에게 애피타이저로 씨간장을 내기도 한다. 그만큼 감칠맛이 풍부해 입맛을 돋워 주기 때문이다. 맛뿐 아니라 씨간장은 버릴 것이 없는 효자 식품이기도 하다. 씨간장독 아래 가라 앉은 소금 결정체를 건져내 여러 번 씻고 말려 사용하면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은 적고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조화로운 천연 조미료가 된다.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단백질과 풍부한 지방을 함유하고 있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에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스님들의 경우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속이 안 좋을 때 속을 다스리기 위해 천연 소화제 용도로 간장차를 마신다.

그렇다고 씨간장이 단순히 오래 된 간장이라는 것은 오해다. 씨간장은 ‘얼마나 오래 됐느냐’가 아니라 ‘다른 간장의 종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맛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맛있는 진간장을 골라 옹기에 5년 간 잘 숙성시켰다면 훌륭한 씨간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종희씨는 "간장은 시간과의 약속을 지켜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라며 "진심으로 다해 정성을 쏟는다면 누구나 씨간장을 만들고 오래 간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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