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동맹, 우주 동맹, 기술 동맹, 칩4 반도체 동맹.
5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동맹이라는 용어가 남발되고 있지만 국제정치학에서 동맹(alliance)은 매우 협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동맹은 상호방위조약과 같은 안보 협정으로 맺어진 국가 관계다. 국가들은 공동의 적이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하는데 동맹국이 침공을 받으면 참전해 같이 싸우겠다는 ‘전쟁 공동체(war community)’의 관계가 동맹의 핵심이다. 같은 편을 먹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겠다는 협정이니 동맹은 국가가 맺을 수 있는 협정 중 가장 중요한 협정이다.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었다면 과연 러시아가 벌건 대낮에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동맹은 늘 전쟁사의 중심에 있었고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동맹을 외교안보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다 보니 동맹은 국제정치학의 주된 연구 주제가 됐고 동맹에 관한 개념과 이론은 나름 잘 정리돼 있다.
제임스 모로 교수에 의하면 대칭적인 동맹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는 대신 정책의 자율권을 침해받는 상충 관계(tradeoff)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자율적으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안보 보장을 확실히 받으려면 해야 할 때가 있다.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다.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이 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방기(放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방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강한 동맹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連累)될 수 있는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핵으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이 한국을 공격했을 때 과연 미국은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의 핵 타격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방기에 대한 우려, 이러한 방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미 동맹의 방위 범위를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미국이 대만을 놓고 중국과 전쟁을 벌일 때 한국이 연루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이러한 이론으로 설명된다. 이렇게 동맹 이론이 잘 정리된 것은 국가 관계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무력 사용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동맹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안보적인 이유로 체결한다.
물론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의 관계가 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중 경쟁, 코로나 전염병,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이유로 글로벌공급망(GVC)이 교란되고 있고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적성 국가에 의존할 경우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핵심 산업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구조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고 있고 다분히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지만 미국의 정책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때 ‘경제번영네트워크(EPN)’라는 전면적인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했다. 국제사회가 호응하지 않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급망 강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아니라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이 믿을 수 있는 국가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에 동조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동맹 이론은 한국이 처한 딜레마를 잘 설명해준다. 한국보다 강한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에 정책 자율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연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동참하기로 했고 칩4도 참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칩4가 진정한 의미의 동맹 관계로 작동하려면 한국이 가입하며 중국에 보복을 당할 경우 나머지 3개국이 ‘참전’해 같이 ‘경제 전쟁’을 치러줘야 한다. 미국이 이러한 대응에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기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칩4는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미국과 협의해 이러한 방어기제를 마련하고 있는가. 동맹의 핵심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칩4 반도체 동맹, 경제 동맹이라는 말은 조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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