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말 (국회를) 통과해서는 안 되는 법안입니다. 남는 쌀을 정부가 무조건 사들여 소득을 보전해주면 콩·밀 같은 대체 작물을 누가 심으려고 하겠습니까. 결국 식량 안보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황근(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4일 서울 영등포구 농식품부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이 예상 소비량의 3% 넘게 더 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떨어지면 정부가 무조건 쌀을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12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상임위(농해수위) 전체회의→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본회의 통과가 남은 상태다.
정 장관은 “(개정안이 만약 시행되면) 쌀 과잉 생산구조가 고착된다”며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 안보 확보에 더욱 열을 올리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쌀 매입에 드는 재정을 식량 주권을 쥘 제대로 된 정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밀을 대체할 가루 쌀 산업 활성화와 해외 곡물 유통망 구축이 식량 안보 확보를 위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식량 안보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전쟁으로 세계 곳곳에서 식량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물가도 급등하며 사람들이 ‘먹거리를 걱정해야 할 때가 왔구나’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바로 지금을 식량 주권 확보 정책을 시행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된다”고 밝혔다.
그는 식량 안보 정책의 두 축으로 ‘자급률 제고’와 ‘안정적인 해외 공급망 구축’을 지적했다.
실제 우리의 곡물 자급률은 심각하다. 이미 2010년 27.6%에서 2020년 20.2%까지 떨어졌는데 곧 나올 지난해 곡물 자급률은 사상 첫 10%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정 장관은 이를 타개할 수단으로 밀 대신 사용 가능한 가공 전용 쌀 품종 ‘가루 쌀’을 자신 있게 꼽았다. 그는 “올해 500톤인 가루 쌀 생산량을 2026년까지 20만 톤으로 늘리겠다”며 “연간 밀가루 수요(200만 톤)의 10%를 가루 쌀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밀 자급률은 0.8%(2020년)에서 7.9%로 오르게 된다”며 “곡물 자급률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정 장관은 2010년 초중반 무렵부터 가루 쌀 대중화를 위한 전도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가루 쌀 품종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특허를 신청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에서 특허를 받아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가루 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 안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밀 수입을 줄일 방법으로 주목 받기 시작하고 있다. 정 장관은 “가루 쌀은 벼와 재배 방식은 똑같은데 재배 기간(3개월 반)은 일반 벼보다 짧다”며 “이 때문에 가루 쌀에 대한 농민의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전분 구조가 단단한 일반 쌀은 가루로 만들려면 물에 불려야 해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더 들어 업체들이 사용을 꺼렸다”며 “가루 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도 잘 부서져 식품 업체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가루 쌀 성공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도 있다. 제조 과정뿐만 아니라 맛에 있어서도 밀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고 이런 탓에 소비 시장이 크게 형성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장관은 “2016년부터 가루 쌀로 빵을 만들어 파는 한 제과 명인이 밀로 만든 빵보다 소비자 반응이 훨씬 좋다고 말하더라”며 “글루텐(밀에 함유된 단백질 성분으로 과다 섭취 시 소화 장애 유발)도 없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CJ·농심·하림 등 식품 대기업들도 가루 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해 앞으로 수출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농식품부는 올해 가루 쌀 약 100톤을 식품 대기업에 제공해 가루 쌀 기반 제품 개발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식량 안보의 또 다른 축인 안정적 공급망 확충을 위해서는 관련 법부터 정비에 나선다.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불안정에 전쟁까지 맞물리며 식량 수출에 빗장을 거는 국가들이 잇따르자 아무리 우리 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공급망을 구축해도 결국 무용지물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해외농업·산림개발협력법에 따르면 식량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농식품부 장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농업 자원을 국내로 반입할 것을 명령할 수 있으나 정부의 공권력 행사로 민간 기업의 손실이 생길 수 있어 사실상 사문화된 탓이다.
정 장관은 “법을 개정해 반입 명령에 따라 해외에서 확보한 농산물을 국내 반입할 때 발생하는 사업자의 손실을 보상하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다음달 국회에 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2개인 해외 곡물 유통 시설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 5개로 늘리겠다”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 500억 원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에, 하림은 미국에 곡물 유통 시설 및 관련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포함한 우리 기업들이 곡물 엘리베이터 등 유통 핵심 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금을 장기 저리로 지원하게 된다.
외식 물가가 3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가운데 외식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도 추가로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장관은 “농축산물 가격의 경우 추세적인 안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면서도 “다만 외식 물가는 전쟁 장기화와 원·달러 환율 상승, 물류비 부담 등으로 당분간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축산물 물가는 7월과 8월 전년 동기 대비 7.7%로 치솟은 뒤 9월 6.6%로 내려왔다. 하지만 외식 물가는 9월 전년 동기 대비 9.0%까지 치솟았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물가가 더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외식 업계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농식품부는 의제매입세액 공제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의제매입세액 공제란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농축산물 등의 매입분에 대해 일정 금액을 매입 세액으로 공제하는 제도다. 정부는 외식 업체의 식재료 수급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제매입세액 공제 한도를 7월 40~65%에서 50~75%로 확대했다. 하지만 가파른 물가 상승과 임대료·인건비 등 경영비 부담 탓에 외식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자 공제율 자체를 늘리는 방안을 추가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복잡한 유통 구조를 디지털화해 유통비를 대폭 낮춘다는 계획이다. 정 장관은 “현재는 도매시장이 수도권에 집중돼 경매 대기 시간이 7시간에 달하고 이동 시간이 길어 유통비가 오르고 있다”며 “이 같은 오프라인 중심의 복잡한 농산물 유통 구조를 디지털화해 효율성을 높이면 물가 상방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농산물의 저장과 선별·포장 등 물류를 자동화하고 전후방 생산·유통 데이터를 연계하는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를 향후 5년 내 50개소로 확대할 것”이라며 “농업인과 소비자 간 온·오프라인 직거래도 계속 늘리는 등 이런 내용을 총망라한 ‘농산물 유통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연내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특히 “현재 1만여 명인 청년농(만 40세 미만 농업 경영주)을 5년 뒤 3만 명까지 늘리는 것이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도 농업의 발전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농업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5일 발표한 청년·후계농 육성 기본 계획을 충실히 이행해 청년들의 농지 확보 및 영농 초기 소득 보전을 지원, 농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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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충남 천안 △대전 대전고 △서울대 농학과 학사 △국방대 국방관리학 석사 △기술고시 20회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인력과장·총무과장·친환경농업정책과장 △농식품부 대변인·농촌정책국장·농업정책국장 △박근혜 정부 대통령비서실 농축산식품비서관 △농촌진흥청장 △국가농림기상센터 이사장 △농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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