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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시장에 대한 오만과 무지

김현수 금융부장

수요 억제·징벌적 세금에 집값 폭등

부동산 위기로 이어진 文정부 '오판'

정책 타이밍 놓치면 신뢰회복 어려워

정부·금융사 함께 위기대응책 내놔야

김현수 금융부장




시장의 공포는 확산 속도가 빠르다. 예상하지 못한 강원도의 힘에 채권시장은 얼어붙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에 시장은 당황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채권 전문가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파산법이 존재하지 않아 법적 소송에 들어가면 강원도가 100% 질 것이고 소송 이후 연체이자까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목적이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레고랜드는 2014년 첫 삽을 뜨자마자 사업성 논란에 시달렸다. 역시 19일 강원도는 내년 1월까지 레고랜드 채무를 전액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한바탕 소동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채권시장은 신뢰가 무너지며 공포에 휩싸였고 단기자금 시장은 멈춰버렸다. 다른 PF 유동화증권은 아무리 높은 금리를 줘도 투자자 유치가 어려워졌고 증권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피하기 위해 ABCP 폭탄 돌리기에 나섰다. 금리 인상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회사채 시장에 레고랜드는 트리거가 됐다. 이런 상황에도 22일 동안 금융 당국은 조용했다. 물밑에서 조율했다고 하지만 정부만 바라보는 시장을 외면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급한 불을 끄려고 나섰으니 말이다. 50조 원+α를 시장에 한꺼번에 공급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시장 참여자들을 안심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을 오만과 무지라고 지적했다. 좋아진 일부 경제지표에 취해 기본을 망각하는 오만과 국제금융시장의 속성을 모르는 무지에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가 추가된다. 정책의 타이밍에 대한 오만이다. 정책 당국이 과거 위기 상황과 비교해 과도한 심리가 위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자기실현적 위기’에 빠져 위기 인식이 낮아지며 정책 집행의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오만과 무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우리는 쓰린 경험을 했다. 최근 국내에서 고조된 위기의 근원인 부동산 시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오만했고 무지했다. 우스갯소리로 정부와 부동산 일타강사 중 누가 시장을 더 잘 알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일타강사라고 답을 한다. 부동산 강사는 프로지만 정부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통제, 수요 억제, 공급 강제 등 문재인 정부의 의도가 모두 실패한 이유는 시장 원리와 정부 역할에 대한 무지와 정치 만능의 오만이다. 부동산 정책의 최종 목적인 주거 안정이라는 명제를 버리고 수요 억제와 징벌적 세금으로 좋은 집에 살려는 욕구를 막아버린 정책에 집값은 폭등했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영끌족’까지 나왔다. 오만과 무지에 휩싸인 부동산 정책의 결과는 현재 위기 상황으로 이어졌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아파트 가격은 경착륙하고 영끌족은 높은 이자에 허덕인다. 불과 2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금융시장은 신뢰와 심리에 좌우된다. 고심 끝에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타이밍을 놓쳐 ‘뒷북’ 평가를 받는다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시장의 불안한 심리는 작은 이슈에도 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다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불안한 상황에서는 위기 신호에 대해서는 좀 더 과감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마침 오늘(10월 25일)은 금융의 날이다. 법정공휴일이 아니다 보니 달력에 표시되는 수많은 날들 중 하나일 뿐 일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게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시상을 하고 축하를 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위기에 정책·감독 당국과 금융사들이 어떻게 함께 대응할지 고민하고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이나 금융 당국이 금융사를 도구나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위기 대응의 파트너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리즈 트러스가 시장에 무지했다고 마냥 비웃을 수만은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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