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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문제투성이인 미국의 예비선거제도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호스트)





이제까지의 역사적 경험과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로 미뤄볼 때 11월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이 공화당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질적으로 국정이 마비될 것이다. 또한 법무부와 헌터 바이든에서 국경 위기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이 잔뜩 벼르고 있는 의회 차원의 조사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반면 지난해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조사하는 하원특별조사위원회는 거의 틀림없이 해체될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물론 이유는 많다. 그러나 핵심 요인은 지난 수 십 년간 미국 정치가 각 정당의 주류를 멀리한 채 극단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선거에 나설 후보를 선택하는 미국의 예비선거제는 대단이 특이하다;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미국과 같은 예비선거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예비선거에서 후보들은 투표 권을 지닌 전체 유권자의 20%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뽑힌 후보들은 전체 유권자들을 아우르는 대표성이 없다. 후보를 결정하는 20%의 유권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평범한 등록 유권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강렬하고 극단적인 견해에 찌든 선동가에 가깝다. 여기에 컴퓨터의 힘을 빌어 수 십년에 걸쳐 단행한 선거구 조정, 즉 게리맨더링이 덧붙여지면서 예선에서 선출된 극단주의적 후보들은 출마만 하면 당선이 확실시 되는 안전한 선거구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들에게 최대 위협은 본선에서 만날 상대당 후보가 아니라 예비경선에서 맞붙는 같은 당 소속 경쟁자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연방 상원과 하원, 그리고 주정부의 공직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이들 중 과반수가 2020년 대통령 선거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승복하지 않는 이른바 “부인론자”(deniers)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291명의 후보 가운데 171명은 안전한 공화당 선거구에서 출마한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의 부채질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공화당 지도자들로부터 초반에 딱지를 맞았던 변두리 이론이 이제는 공화당의 다수의견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선거 불복은 미국인들의 다수의견이 아니다. NBC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는 트럼프가 2020년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고 답했다. 반면 선거결과를 부인하는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21%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비선거와 게리맨더링 사이에서 국민의 다수 의견은 묻혀버렸다. 우익 골수 지지층에 잘 보이려면 낸시 펠로시가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한다든지 바이든은 공산주의자이며 민주당은 친-범죄 집단이라는 식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실제로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민주당은 공화당이 죽기를 원한다”며 “공화당 죽이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예비선거 이전 시대에 선거에 나설 후보를 정하는 미국과 다른 주요 국가들의 대체 시스템은 “연기로 가득찬 방”(smoke-filled room)으로 불렸다. 당시 후보들은 당의 보스들에 의해 가려졌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연기가 가득찬 방의 보스가 어떤 인물들이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은 시의회 의원과 시장, 주지사와 의회 의원들이었다. 다시 말해 예비선거를 거치지 않고 직접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선택받은 선출직 인사들이다. 당연히 대중과의 접촉면이 넓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에서 허셸 워커 같은 후보를 낙점하는 정당의 원로는 없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비선거 제도는 후보 결정을 당의 가장 극단적인 분파에 맡긴다. 소셜미디어는 예비 유권자들보다도 훨씬 작은 그룹이면서도 가장 시끄럽고 거친 당내 인사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화재에 기름을 부었다.

물론 공화당 쪽의 문제가 훨씬 심각하고 위험하긴 하지만 민주당 역시 이같은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이든의 운신 폭이 좁은 이민과 에너지 등 숫한 이슈들에 대해 당의 기반 지지층은 주류에 비해 훨씬 극단적인 견해를 표출한다. 최근 프래킹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바꾼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후보 존 페터먼이 그랬듯, 마음을 바꾸기 전에 비슷한 결정을 내렸던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적 운명을 오래 된 비디오 클립을 통해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중도로의 갑작스런 방향전환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막스 피셔는 영국의 정치가 기능장애를 일으킨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양대 정당이 미국의 예비선거제도와 유사한 지도자 선출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제레미 코빈과 같은 극좌 지도자를 골라잡는 대신 카리스마 넘치는 온건파 데이비드 미리밴드를 거부했다. 최근 지도자 선출 과정에서 보수당이 겪은 진통은 이 문제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실행가능성이 없고 이미 한물 간 대처리즘(Thatcherism)을 살짝 손 봐 내놓은 리즈 트러스는 선거로 뽑힌 영국 의원들 (구 제도의 당내 보스들) 투표에서 거의 언제나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표성과는 무관한 보수당 당원들의 총아였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지도자 선출의 최종 결정권을 행사했다.

포퓰리즘의 시기에 견고한 중도주의자들이 독일과 프랑스의 국가경영을 맏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두 나라는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원칙에 바탕을 둔 전통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줄기차게 고수했다. 미국에서, 그리고 영국에서도 민주주의는 소수에 의한 지배로 바뀌었고, 권력을 장악한 소수는 대표성이 없고,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며, 점차 급진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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