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다 나은 올해’. 골프 선수들이 새 시즌 목표로 가장 많이 얘기하는 말이다. 박민지(24)는 이 흔한 말을 입밖에 내기가 무척 곤란했다. 지난해 누구도 넘보기 힘든 ‘역대급’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작년보다 낫거나 비슷한 성적을 목표로 내걸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박민지는 그러나 끝내 해냈다. 시즌 최종전에서 6승째를 거두며 지난 시즌 자신이 이룬 승수와 동률을 이뤘고 여러 부문에 있어 지난해보다 오히려 나은 기록을 냈다. 2년 간 12승 등 통산 16승으로 15승의 장하나를 제치고 현재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뛰는 선수 중 다승 1위에도 올랐다. 박민지의 최근 2년은 2007년 9승, 2008년 7승으로 2년 간 16승을 거둔 신지애를 떠오르게 한다.
박민지는 13일 춘천 라비에벨CC(파72)에서 끝난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에서 사흘 합계 9언더파 207타로 우승했다. 2위 안송이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 상금은 2억 원. 이미 상금왕 2연패를 확정한 박민지는 상금 14억 7700만 원으로 시즌을 마쳤다. 지난 시즌 자신이 세운 한 시즌 최다 기록인 15억 2100만 원에 조금 못 미치지만 역대 2위 기록이다. 2017년 데뷔해 6년 차인 박민지는 첫 네 시즌은 매년 1승씩 챙겼고 이후 2년 간 무려 12승을 쓸어 담았다. 16승을 쌓은 6년 동안 모은 상금이 50억 원을 돌파했다. 50억 달성은 장하나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더 이룰 게 없어 보이지만 “노련함이 아직 부족하다”며 내년에도 국내 무대를 뛰기로 한 박민지는 2024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달 5승째를 올린 뒤 지난주 30위권에 처지면서 올 시즌 가장 안 좋은 성적을 낸 박민지는 1주 만에 우승으로 벌떡 일어서며 ‘클래스’를 확인했다. 첫날 4타 차 공동 17위였던 그는 2라운드에 버디만 7개를 몰아치는 차원 다른 플레이로 단숨에 2타 차 단독 선두로 올라섰고 이날 3라운드에서 버디 3개, 보기 3개로 타수를 잃지 않으면서 기어이 6승으로 마무리했다. 박민지는 날카로운 웨지 샷을 앞세워 11번 홀까지 3개의 파5 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아 독주에 나섰다. 막판에 보기 3개가 나왔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다.
지난 시즌 역사적인 한 해를 보내고도 컷 탈락이 많아(네 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던 박민지는 올 시즌은 기권만 두 번 있을 뿐 컷 탈락은 아예 없다. 지난해는 전반기에 6승을 쏟아붓고 8월부터는 우승이 없었지만 올해는 8월부터도 3승이나 기록했다. ‘업그레이드’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년 연속 상금왕과 다승왕을 차지한 박민지는 “타수 차가 많이 난다고 17·18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한 걸 보면 아직 아쉬운 부분이 있다. 겨우내 운동 선수다운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 샷과 기술도 조금씩 더 날카롭게 다듬을 것”이라고 했다.
대상(MVP) 포인트 1위에서 2위 유해란의 추격을 받던 김수지는 3언더파 공동 7위에 올라 함께 7위로 마친 유해란을 제치고 대상을 확정했다. 최소타수상(70.47타)까지 2관왕을 차지했다. 3주 연속 우승 대기록에 도전했던 이소미는 1오버파 공동 25위로 마쳤고 이소영(4언더파 공동 5위)은 7번 홀(파3) 홀인원으로 7000만 원 상당의 메르세데스 벤츠 EQA 250 차량을 받는 행운을 안았다.
내년 출전권을 확보한 60명도 정해졌다. 상금 62위였던 정지민이 60위로 올라가 극적으로 시드전을 피했고 57위였던 서어진은 이번 대회 부진으로 61위로 떨어졌다. 29만 8000원 차이로 15~18일 열릴 ‘지옥의 시드전’에 끌려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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