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올해 1962년생들이 정년퇴직하고, 내년에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1963년생들이 퇴직을 하면 1차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가 마무리된다.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기 전인 2010년경,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1955년생들이 만55세가 되면서, 은퇴 쓰나미가 몰려온다며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8년이면 끝날 것 같았던 은퇴 러시가 13년간 이어지다 보니, 쓰나미가 아닌 잔잔한 파도로 약해진 느낌이다.
장기간에 걸쳐 많은 사람이 은퇴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 사회에 은퇴문화가 정착돼 가는 듯하다. 대중교통이나 동네의원에서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등산, 낚시, 캠핑 등 취미생활 터에 가보면 은퇴 후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수강 신청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이른 아침 새벽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시골에서는 농막 하나 가져다 놓고 소일거리 농사짓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한 풍경이 됐다.
비록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마무리될지라도 후배들의 퇴직은 계속 이어질 것이므로, 앞으로 퇴직을 맞게 될 사람들에게 몇 가지 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라 할지라도 퇴직을 하게 되면 그동안 누리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나와야 한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바로 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다. 회사 일을 그만두게 되니 그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 지위, 역할 등을 놓고 나와야 한다. 내가 출근해 일하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침범하지 못하는 가히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그 자리를,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나와야 한다. 재직 중 아무리 헌신적으로 일해왔다 할지라도 별수 없다.
신분증과 출입증을 반납하게 되니, 그동안 마음대로 드나들던 회사 출입문도 이제는 외부 방문객으로 허가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특히 보안이 중요시되는 회사는 내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회사 전산망 접속이 차단되고, 이메일 사용도 불가해지며, 업무적 비업무적으로 운영되어오던 단체 채팅방에서도 나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 후 내 필요에 의해 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자료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쁘게 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부탁해야 하는데, 그런다고 모든 자료를 다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두고 나와야 하지만 퇴직 후 나의 신분 변동에 따른 행정 처리와 재취업을 위해 꼭 필요한 자료들은 챙겨 나와야 한다. 그동안 내가 일해온 흔적과 성과들은 퇴직 후 재취업에 활용할 수 있고, 신분 변동에 따른 세무 관리 등 은퇴 후 행정 처리를 위해 필요한 것들도 있다.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이 특히 강조되는 요즘, 퇴직 후 후배들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자료도 있으니, 퇴직 전에 미리 챙겨 나오도록 하자.
첫째, 우선 그동안 써오던 회사 이메일을 정리하자.
퇴직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 곳이 있다면 퇴사로 인해 더 이상 회사 이메일을 사용할 수 없음을 알리고, 주소변경을 통보하자.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이메일 주소도 미리 적어두자.
둘째, 퇴직 당시 가입돼 있던 회사의 단체실손보험 가입내역을 챙기자.
일정 조건에 맞으면 재직 중 가입하고 있던 단체보험을 퇴직 후 한 달 이내에 단체 실손과 같거나 유사한 일반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수 있다. 단체보험은 퇴직과 동시에 보장이 종료된다. 사전에 개인 실손보험에 가입해놓지 않았다면 단체보험을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전환을 위해서는 단체보험이 가입돼 있는 보험사와 가입내역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전환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 전환이 불가하고 개인실손보험 가입도 안 되어 있다면, 그동안 미루고 있던 치료를 퇴직 전에 받고 나오도록 하자.
셋째, 퇴직 연도의 마지막 연봉에 대한 연말정산 결과물인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챙기자.
대부분 퇴직하면서 세금 문제는 다 정리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 특히 연도 중 퇴직자의 경우 퇴직 후 시행한 중도 퇴사자 연말정산이 인적공제만 반영한 약식 정산이므로, 이때 받지 못한 공제를 다음 연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추가 신청하면 기납부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퇴직 다음 연도 1월에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를 통해서 공제서류도 출력해야 한다. 공제 항목에 따라서 퇴직 전 지출한 비용만 공제 가능한 것과 퇴직 후 지출한 것도 공제되는 항목이 있으므로 꼭 월별 지출내역으로 출력하도록 하자.
넷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았다면 퇴직소득원천징수영수증도 챙기자.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았다고 할지라도 이를 다시 연금계좌에 입금하면 퇴직금 수령 시 공제되었던 퇴직소득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이때 연금계좌에 입금한 돈의 원천이 퇴직금이라는 걸 확인시켜주기 위해 퇴직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 필요하다. 비록 일시금으로 받았다 할지라도 이 영수증에 나와 있는 퇴직소득세 금액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연금계좌에 넣어 놓고 연금으로 받고자 하는 동기가 생길 수 있다.
다섯째, 마지막 월급의 급여명세서를 챙기자.
급여명세서에서 건강보험료와 노인장기요양보험료를 각각 얼마씩 공제했는지 확인해보자. 국민건강보험은 퇴직하면 직장가입자 자격을 잃게 된다. 지역가입자나 피부양자로 가야 하는데 피부양자로 갈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로워 지역가입자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가입자로 가게 되면 지역 세대원 전원의 소득과 재산, 자동차에 대해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므로 금액이 적지 않다. 이때 임의계속가입자로 갈 수 있는데 임의계속가입 시 내야 하는 건강보험료가 퇴직 전에 본인 급여에서 공제되던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역건강보험료 고지액과 임의계속가입자의 보험료를 비교해서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본인의 퇴직 전 건강보험료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두는 게 좋다.
여섯째, 본인의 재직 중 인사기록을 정리해서 나오자.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해서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이때 과거 직장 경력을 적기 위해 필요하다. 퇴직 당시에는 재취업할 생각이 전혀 없다가도 퇴직 후 시간이 지나면 재취업 의지가 생길 수 있으니 일단 챙겨 나오자. 퇴직하고 몇 개월 동안 맘 편히 놀다 보면 과거 직장에서의 일들은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자기소개서 하나 쓰려해도 전 직장에서의 경력이 주 내용이 되어야 하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 직장에 전화해서 내 인사기록을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퇴직하기 전에 미리 정리해놓자. 어떤 업무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는지가 모두 나의 경력자산이다.
일곱 번째, 재직 중 맡았던 직무나 특정 프로젝트에서 거둔 성취업적을 정리해서 나오자.
중장년층의 재취업 시장에서는 경력자산이 경쟁력이 된다. 이때 단순하게 어느 회사에서 몇 년간 근무했었다는 이력이 아닌 재직 중에 거둔 성취업적을 구체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력기술서를 요구하는 취업처에는 본인의 경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재직 중에 있었던 성공적인 업무수행 사례들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과제나 목표가 주어졌고, 어떤 행동을 취해 어떤 성과를 거두었으며, 거기서 배운 점은 무엇이고, 일하면서 축적된 비즈니스 인맥은 어느 정도인지를 어필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회사 생활을 해오면서 업무적, 비업무적으로 구축된 인적 네트워크의 인물 목록을 정리하고, 그동안 받아둔 명함들, 추억어린 사진들도 정리해서 챙겨 나오자.
회사의 보안 사항이나 개인정보와 관련된 자료들은 피하고, 놓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은 놓고 나오더라도, 필요한 것들은 꼭 챙겨 나오도록 하자. 퇴직한 선배가 이것저것 해달라는데 좋아할 후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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