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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정주영 반값 공약부터 토지임대부까지…요란했지만 성공 사례 없다

◆계속되는 ‘반값 아파트’ 실험

2006년 이후 세차례 공급후 중단…‘찻잔속 태풍’ 그쳐

SH, 강남권 3억 원대 공급한다지만 택지 확보가 관건

그린벨트 보금자리 반값…로또 광풍·전세가격 상승도

소비자 선택권 확대 긍정 평가 속 지속 가능성 미지수





14대 총선과 14대 대선이 치러진 1992년.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의 ‘반값 아파트’ 공약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31명(전국구 7명 포함)의 당선자를 내면서 단번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 그의 반값 아파트 공식은 이랬다. 분양가의 10~30%를 차지하던 채권입찰제를 폐지하고 기반시설 설치 비용을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면 가격을 확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건축비와 택지비의 거품을 빼면 반값 아파트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대담한 구상은 대선 참패로 물거품이 돼버렸지만 정 후보가 던진 반값 화두는 30년이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시는 이르면 이달 중 윤석열 정부의 1호 반값 아파트를 사전 예약제로 공급할 예정이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은 지난달 9일 ‘토지임대부주택’ 공급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토지임대부주택은 땅은 SH가 소유하고 그 땅에 지은 아파트만 분양하는 주택 유형으로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지구에서 500가구가 스타트를 끊는다. 토지임대부주택의 등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12월 강남구 우면동 402가구 공급 이후 10년 만이다. SH가 밝힌 분양가는 전용 59㎡(24평형) 기준 3억 5000만 원선. 토지임대료로 매월 30만 원가량을 따로 내야 하는 부담을 감안하더라도 파격적인 분양가다. 같은 크기 주택의 주변 시세는 10억 원을 호가한다.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앞서 국토교통부가 5년 동안 윤석열표 공공분양 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10·26 청년주거안정대책의 일환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에서 신혼부부와 청년을 겨냥한 반값 아파트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국토부는 당시 대책에서 시세의 70% 이하로 저렴하게 공급하되 처분 시 시세 차익을 공공기관과 공유하는 ‘나눔형’ 공공분양 25만 가구 공급 계획으로 공약 실현을 구체화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나눔형 25만 가구 중 일부가 토지임대부주택으로 분양된다”며 “서울에 택지를 확보한 SH가 주로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토지임대부, 진보측 주장을 보수 정치권이 법제화


2007년 국회에서 한나라당 주최로 열린 반값 아파트 토론회 광경. /연합뉴스


토지임대부주택의 원조는 집값이 폭등했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싱가포르와 스웨덴 등에 도입된 모델로 노무현 정부 시절 진보 시민단체들이 해외 사례를 소개하면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진보의 아이디어를 보수 정치권에서 제도화했다는 점이다. 주역은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홍준표 현 대구지사다. 그는 2006년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토지임대부주택의 폭발력을 간파하고 ‘반값 아파트’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2009년 ‘토지임대부주택 공급 특별법’ 제정안을 사회주의 발상이라는 당내 논란을 무릅쓰고 당론으로 관철시켜 국회 통과까지 이끌어냈다.

실제로 첫 공급은 법령 제정에 앞선 2007년 10월 경기도 군포 부곡지구에서 이뤄졌다. 이때 실험한 유형은 토지임대부주택 외에도 분양가를 낮추는 대신 시세 차익을 공공기관이 전액 회수하는 환매조건부 등 두 가지였다. 양쪽 모두를 실험해보고 가능성이 있다면 확대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지만 두 유형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전체 804가구(토지임대 389가구, 환매조건 415가구) 가운데 최종 계약 가구 수는 178가구(7.5%)에 그쳤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온전한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호가 낮았다”며 “사실상 임대주택과 다를 바 없었다”고 지적했다.

반값 아파트에 실패한 정책이라는 꼬리표가 달렸음에도 실험은 역대 정부에서 계속됐다. ‘반값에 내 집을 마련한다’는 슬로건의 정치적 매력도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반값 아파트가 대규모로 공급된 시기는 신혼부부 반값 아파트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 때다. 이른바 ‘보금자리’ 반값 아파트다. 서울 등 수도권 그린벨트를 주택 공급원으로 삼다 보니 땅값이 분양 가격의 40~70%쯤 되는 서울에서는 반값 실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공주택의 로또화…최초 입주자만 이득




2009년 10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 88체육관에서 실시된 보금자리 시범단지의 사전 청약 모습./연합뉴스


MB표 반값 아파트는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찮았다. 수도권의 허파인 그린벨트를 훼손했다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로또 청약’을 부추기고 개발 이익을 최초 입주자에게 몰아준다는 비판이 거셌다. 서울 강남권 분양 가격은 3.3㎡당 1000만 원 안팎으로 시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로또 아파트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청약 대기 수요로 수도권 전셋값이 오르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토지임대부주택이 재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하지만 공급은 서초구 우면동(358가구)과 강남구 자곡동(402가구) 등 단 두 차례 760가구에 그쳤다. 반의 반값이라 시세 차익이 너무 크다는 비판에 정부가 두 손을 들었던 것이다.

반값 아파트는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하면서 진화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윤석열표 토지임대부주택은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공공자가주택’의 변형으로 그동안 드러났던 문제점을 보완했다.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환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환매조건부주택과 흡사하지만 시세 차익을 보장하는 데서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반값 아파트 정책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지속 가능성과 정책 효과가 의문스럽고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반쪽만 소유한다는 단점을 뛰어넘으려면 땅값이 비싼 곳, 다시 말해 입지가 좋아야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땅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난을 해소할 정도로 의미 있는 공급 물량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보금자리 로또 아파트처럼 최초 분양자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면 공공성을 되레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 가격을 어떻게든 낮춘다 해도 결국 주변 시세로 수렴돼 주택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권 토지임대부아파트(LH강남브리즈힐 34평형) 시세는 13억 원으로 2012년 말 분양가 대비 6배가량 올랐다.

반값이 아닌 반쪽의 제값…보여주기식 이벤트 지적도


올해 2월 서울에서 ‘반의 반값’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김헌동 SH 사장. /연합뉴스


입주할 때 저렴하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30~40년 지나면 건물의 자산 가치가 감가상각으로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진다는 단점도 있다. 막대한 땅값 부담으로 재건축도 쉽지 않다. 시장에서는 이런 이유로 서울 또는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요지에서나 통하지 3기 신도시 외곽에서는 미분양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 교수는 “외견상 반값이라 묘수처럼 보이지만 건물분 반쪽을 반값에 분양받는다면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토지임대부주택은 SH의 구상대로 전셋값 수준에 공급한다면 분명히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완자(완전 자가)’가 아닌 한계는 명확하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시장경제에서 반값이 지속 가능할 수는 없다. 손재영 교수는 “토지임대부든 이익공유형이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반값 아파트는 실험은 할 수 있겠지만 결코 주력 모델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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