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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칼럼] 독립 보다 삶의 질을 선택한 대만 민심과 중국의 셈법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단한 삶에 '반중 슬로건' 외면

집권 민진당 지방선거에서 참패

中, 2024년 차기 총통선거 염두

'일국 양제' 압박 수위 높여갈 듯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로 대만해협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시진핑 체제는 ‘하나의 중국’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면서 외부 세력인 미국의 대만 문제 개입을 경고했고 미국은 지난달 발표한 ‘미국 전략 보고’에서 ‘현상 변경의 의지와 힘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로 중국을 지목하며 대만 수호 의지를 강조해오고 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술적으로 타협했으나 대만해협을 둘러싼 전략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만에서는 또 다른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 ‘2022년 한·대만 싱크탱크 정책 대화’에 참여한 대만학자들은 대만해협 위기의 원인과 해법은 달랐지만 대만 독립 문제가 모든 국내 정치적 의제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집권 세력인 민주진보당은 11월 26일 열린 지방선거에서 21곳의 현과 시에서 13곳을 국민당에 내주면서 대패했고 차이잉원 총통은 책임지고 당 주석직을 내려놓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은 ‘중국에 대항하고 대만을 지키자(抗中保臺)’를 슬로건으로 중국 위협론을 고조시켰으나 실제로 고단한 삶의 위기에 놓인 민심은 그곳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대만 유권자들은 ‘독립’ 대신 ‘내 삶을 변화시키는 정치’를 주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5510달러로 일본과 한국을 제쳤고 세계 제일의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사가 삼성전자보다 많이 팔면서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떨쳤으나 정작 유권자들은 고물가, 고금리, 주거 문제, 코로나19 방역 문제, 교통 체증 등 당장의 삶을 위협하는 집권당의 생활 정치에 대한 불신을 보였다.



이러한 대만 정치의 변화를 중국 정부도 발 빠르게 파고들었다. 중국 국무원 대만 사무실 대변인은 선거 결과를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대만의 주류 민심’이라고 보고 고무된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나 중국에 저항하는 차이잉원 정부의 동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집권당의 무덤이었던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패배한 것일 뿐 민심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나 ‘하나의 중국’에 대한 정책 변화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상당하다. 사실 대만인의 84%가 대만 출신인 본성인이고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 출신은 14%에 불과하며 대만인들 스스로 민족 정체성,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 대만 독립에 대한 정치적 지향이 있다. 다만 현재 대만의 생존 방식에 대해서는 매우 실사구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말 대만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42%에 달했고 지난 5년간 대만의 대중국 수출은 71%나 늘었으며 당분간 세계 최대의 중국 시장을 대체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만 경제가 홀로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통일도 독립도 아닌 현상 유지를 원하는 흐름이 넓게 형성돼 있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도 대만인의 64%가 반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반영한다.

향후 중국의 대만 정책 방향도 경제적 불안 심리와 양안 관계 파국에 대한 우려를 자극해 민진당과 대만 주민을 최대한 분리해 대만 현상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대만정책법안’ 등을 통해 대만을 전략자산화하고 있고 중국도 코로나 민심 이반에 직면한 상황에서 체제 원심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강공 모드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1월에 열릴 대만 총통 선거에서 최대한 유리한 정치적 지형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민심의 풍향계는 언제든 바뀔 것이고 중국의 강공 모드가 대만의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문제는 각국의 전략적 셈법이 달라 대만해협 위기 본질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미국의 행동 범위와 개입 방식에 따라 한반도로 그대로 파급될 가능성도 높다. 대만해협에 대한 섬세한 모니터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만 문제가 더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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