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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와중에 아파트 사전청약 해야 하나

◆권구찬 선임기자

수도권 1만 가구 조기분양 예고

'패닉바잉'에 급조한 변칙 정책

부동산 한파 속에서 답습하다니

규제완화에 맞춰 출구 모색해야

권구찬 선임기자




이달로 예정된 화제의 반값 아파트 토지임대부주택의 사전청약 시기를 두고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고심 중이다. 아파트를 지을 땅(강동구 고덕강일지구)도 있고 분양가와 임대료 책정 등 준비를 거의 완료했지만 토지임대부라는 생소한 주택 제도를 뒷받침할 법률 개정이 완료되지 않아 찜찜한 모양이다. 국토교통부는 사전청약이 단순 예약이므로 법 개정 이전이라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와 SH로서는 불완전 판매 논란 탓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사전청약제 시행을 멈추라는 거다. 제도 완비 이전에 ‘개문발차’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만도 아니다. 법률 개정 여부를 불문하고 서울시가 오랫동안 지켜온 후분양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시 공급분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부는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반값 아파트 대선 공약에 맞춘 ‘신형’ 공공분양 50만 가구를 짓기로 하고 이 중 연내 3000가구를 포함해 내년까지 1만여 가구를 사전청약제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3기 신도시 홈페이지에는 ‘공공주택 시범 단지 사전청약 공고는 12월 말 예정돼 있다’는 팝업 창이 떠 있다.

멈춰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정책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익이 불분명하다. 공포에 질려 집을 서둘러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을 사두고 대출이자를 갚느라, 혹은 집값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 아닌가. 이 제도는 입만 열면 주택 공급은 차고 넘친다던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 카드를 급조하면서 부활시켰다. 도면상 가상의 아파트를 두고 깜깜이 분양을 해서라도 ‘패닉 바잉’을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비정상적 공급 대책이었다. 지금이 변칙 공급 속도전을 해야 할 시기인가. 가격 하락 폭과 거래량은 역대 최악이다. 10만 명 청약설이 나돌았던 서울 송파구 둔촌주공 재건축아파트 청약에서 1순위 미달이 나왔다. 지방의 미분양 사태가 점차 북상해 파주와 인천까지 할퀴고 있다. 공공 부문의 사전청약은 민간 아파트 미분양을 부추길 게 뻔하다.



인플레이션발 원가 상승은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건축 자재 대란으로 1~2년 뒤 본청약 때 사전에 약속한 분양가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고금리로 택지 개발 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반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서는 집값이 반 토막 났다는 비명도 들린다. 원가는 오르고 주변 시세가 떨어지면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싸게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약속도 흔들리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보금자리 사전예약제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기다림에 지쳐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3~4년씩 입주가 늦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입주까지 11년이 걸린 곳도 있다. 지독한 내 집 마련 희망 고문이 아닐 수 없다. 희망 고문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1~2년 뒤 본청약한다는 약속은 이미 깨졌다. 지난해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때 공지한 본청약 일정을 4년 뒤인 2025년으로 책정한 사례도 있다. 올 상반기에는 더 늦어져 2026~2027년 본청약 일정이 수두록하다. 그때야 집값이 급등했으니 그냥 넘어갔다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사전청약제는 기본적으로 시세 차익이 보장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작동하는 제도다. 착공과 동시에 분양하는 선분양제 역시 1970년대 분양가 통제의 반대급부로 탄생한 제도다. 정권이 바꿨으니 과거 정부와 차별화한 신모델을 서둘러 선보이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두 달 전 공급 계획 발표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없던 일로 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실익은 불분명하고 부작용이 있는 제도를 답습하는 것은 더 문제다. 정부가 주택 시장의 정상화를 기한다면 그에 걸맞은 정책이 필요하다. 출구전략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나 서울시는 후분양 원칙을 훼손해가면서 사전 분양할 가치가 있는지 냉정히 따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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