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로부터 100m 이내에서 모든 집회와 시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한 현행법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다만 법 개정 시까지는 기존 법규가 인정돼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집회를 여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다.
헌법재판소는 22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가 설정한 100m 집회 금지 구역 가운데 ‘대통령 관저’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조항을 즉각 무효로 만들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고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해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심판 대상 조항은 2024년 5월31일 이후 효력을 잃는다.
앞서 청구인 A 씨는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2017년 8월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경계지점으로부터 약 68m 떨어진 분수대 앞에서 집회를 주최했다가 집시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A 씨는 적용 법규가 헌법에 위반된다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집시법 11조가 설정한 100m 이내 집회 금지 구역은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이다. 위반 시 주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관들은 “심판 대상 조항은 법익에 대한 위험 상황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집회까지도 예외 없이 금지하고 있다”며 “막연히 폭력·불법적이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을 근거로 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이 집회를 통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하는 경우 대통령 관저 인근은 그 의견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장소”라며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 보호라는 목적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약 정도를 비교했을 때 심판 대상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단순 위헌이 아니라 법 개정 시한까지 적용돼 여전히 유효한 잠정 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이어서 대통령 관저 인근의 집회가 곧바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개정 시한을 넘어서면 현행 조항이 효력을 잃게 돼 집회가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