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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중국에 기독교 전래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올해 중국은 뒤늦은 코로나 방역 완화로 확진자가 폭증하는 바람에 대단히 경직되고 우울한 성탄절을 보냈다.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성탄절이 공식 휴일은 아니지만 이미 대도시를 중심으로 성탄절 이브에 평안을 뜻하는 사과 선물을 주고받는 등 성탄절 문화가 확산한 지는 오래됐다.





중국에 성탄절을 기념하는 기독교가 전래한 것은 지금부터 1400여 년 전인 당나라 시기로 올라간다. 당의 수도이자 동서 교류의 중심지였던 장안(시안)에 ‘경교(景敎)’로 불리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선교사들이 도달한 것이다. 외래 종교에 관대했던 당태종이 경교의 정착과 전파를 후원한 덕이다. 당시 시리아권에 속한 기독교 공동체였던 네스토리우스파의 교리와 중국으로의 전래 과정은 781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에 새겨져 장안 시내 서북쪽에 위치한 대진사(大秦寺)에 세워졌다.

하지만 9세기 대진사가 파괴될 때 이 비석 역시 땅속에 파묻혀 800년 동안 잊혀졌다. 그러다 1620년대에 이 비석은 극적으로 발굴됐고 당시 중국에 들어와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니콜라스 트리고 등이 비문을 라틴어로 번역해 유럽에 널리 알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경교 기독교인 공동체는 원나라 시기에 전성기를 이루다 명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지만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명 후기에 극적으로 발견되고 ‘부활’해 중국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높이 3m, 폭 1m, 무게 2톤에 달하는 대형 비석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는 1789개 한자와 40여 개 시리아 문자가 적혀 있다. 그리고 끝에는 사제 72명의 이름이 한자와 시리아 문자로 함께 새겨져 있다. 매장과 발견, 그리고 해외 밀반출의 위험을 모두 이겨낸 비석은 1907년 시안 비림(碑林)박물관에 옮겨진 후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성탄절이 양제(洋節·서양에서 들어온 기념일)라며 거부하려 하지만 중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지 1400년이나 됐음을 잊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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