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반도체는 전자기기 속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칩이다. 전자기기 속 배터리가 전력을 공급하고 배분할 때 생기는 손실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가전제품의 기능이 고도화함에 따라 쓰임새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와중에 전력반도체 업계에서 ‘게임 체인저’가 등장했다. 바로 자동차 분야다. 최근 2차전지를 활용한 전기차가 조명을 받으면서 자동차 안에서 전력을 제어하는 반도체의 역할이 덩달아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반도체의 유약한 내구성이 문제다. 반도체 주요 소재인 실리콘(Si)으로 만든 범용 전력반도체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고압·고온·고주파를 버텨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차량용 전력반도체가 극한의 환경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탑승자의 생명에도 치명적이다.
이러한 실리콘 전력반도체의 약점을 극복한 칩이 실리콘카바이드(SiC)·질화갈륨(GaN), 즉 화합물 반도체다. 두 종류 이상의 원소를 결합해 새로운 웨이퍼를 만들어 그 위에 회로를 만드는 방식이다. 실리콘 반도체의 최대 동작 온도가 150도라면 SiC 반도체는 400도, GaN 반도체는 800도에서도 역할을 수행할 만큼 혁신적이다.
다만 화합물 반도체는 제조 방법이 까다롭고 구현이 어려워 가격이 비싸다. 업계에 따르면 SiC 웨이퍼 장당 단가는 1000달러 수준으로 실리콘 웨이퍼보다 10배 이상 높다. 또 현재까지 업계에서 만들 수 있는 100% GaN 기반 웨이퍼 크기는 2인치 수준이다. 양산이 가능한 6~8인치 웨이퍼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까지는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주요 수요 업체인 완성차 업체들은 높은 단가 형성에도 화합물 전력반도체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테슬라의 경우 전체 전기차 판매량 중 SiC 반도체를 탑재한 자동차의 비중을 2018년 64%에서 2022년 99%까지 올렸다. 현대자동차도 아이오닉 제조에 SiC 반도체를 활용했고 제네시스 역시 이 칩을 채택했다.
신한투자증권 기업분석부는 “전기차용 SiC 전력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2021년 2조 원에서 연간 70% 이상 성장해 2025년이면 19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외에도 세계 곳곳의 반도체 업체들은 시장 가능성을 보고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의 강자는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미국 크리, 독일 인피니언이다. 미국 온세미의 경우 경기 부천시에 2025년까지 1조 4000억 원을 투자해 SiC 전력반도체 연구개발(R&D)·제조 시설을 설립하며 이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손잡고 GaN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이 전력반도체 분야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SK㈜는 지난해 4월 1200억 원을 들여 예스파워테크닉스 지분 95.8%를 인수했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국내 대기업들과 전력반도체 협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계열의 웨이퍼 업체 SK실트론은 2019년 미국 듀폰의 SiC 사업부를 인수해 현지에 SK실트론CSS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 회사를 방문한 적도 있다. 토종 파운드리 기업 DB하이텍, 국내 팹리스 1위 업체 LX세미콘, 신생인 파워마스터 반도체 등도 전력반도체 R&D와 투자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가 전력반도체 검토를 끝내고 사업을 본격화한다면 풍부한 자본과 생산 경험, 특유의 추진력을 토대로 재빠르게 시장 선점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삼성전자는 한편 전력반도체 TF 외에도 반도체 신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사내에 다양한 임시 조직을 꾸리는 분위기다. 지난해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사장 직속으로 ‘어드밴스드 패키징 TF’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초미세 회로의 제조 한계로 첨단 후공정이 주목 받으면서 구성한 이 TF는 지난해 조직 개편을 통해 어드밴스드 패키지 팀으로 격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17일 반도체 패키징 라인이 있는 천안·온양캠퍼스를 방문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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